21일 이탈리아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시온’(Ultima Generazione) 활동가 7명이 로마 트레비 분수에 먹물을 풀고 “우리는 화석연료에 돈을 지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트위터 갈무리
최근 홍수로 14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탈리아에서 환경단체 활동가들이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며 로마의 유명한 트레비 분수에 먹물을 퍼붓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21일 <가디언> 등에 따르면,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치오네’(마지막 세대) 활동가 7명은 이날 트레비 분수에 들어가 먹물을 풀고 “우리는 화석 연료에 돈을 쓰지 않겠다”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었다. 또 “우리나라가 죽어가고 있다”고 외쳤다. 이들은 화석 연료에 대한 정부의 공공 보조금 지급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수백여명의 관광객은 분수 주변을 둘러싸고 박수를 치고 환호하거나 야유를 퍼부었다. 이들의 시위 장면은 3분여간의 영상으로 편집돼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이탈리아 경찰은 활동가들을 분수 밖으로 끌어낸 뒤 경찰차에 태웠다.
18세기 만들어진 로마 트레비 분수는 세계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소로 영화 <로마의 휴일>(1953년) 등 여러 예술 작품에 등장했다. ‘울티마 제네라치오네’는 자신의 누리집에 “우리는 근시안적이고 이기적인 정책으로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을 방관하기를 거부하는 일반 시민”이라며 “30년간의 청원, 플래시몹, 집회 등은 불행히도 심각한 기후 위기를 가져올 만큼 충분히 효과적이지 않았다. 급진적인 행동으로 우리는 여론을 자극하고 정치인들에게 더 큰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21일 이탈리아 환경단체 ‘울티마 제네라시온’(Ultima Generazione) 활동가들이 경찰에 끌려나오고 있다. 트위터 갈무리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하루 일찍 마치고 귀국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북부 한 마을을 찾아 주민을 위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에 앞선 16∼17일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에선 갑작스레 쏟아진 비로 홍수가 나 14명이 숨지고 3만6천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 단체는 성명에서 “최근 발생한 홍수 피해를 계기로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이 같은 시위를 벌였다”면서 “사용한 식물성 먹물은 분수를 훼손시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트레비 분수뿐 아니라 이탈리아 내 다른 유명 분수에서도 같은 퍼포먼스를 벌여 논란을 키우는 중이다.
로마시 관계자들은 이들의 행동을 강하게 비판했다. 로베르토 구알티에리 로마 시장은 트위터에 “문화유산에 터무니 없는 공격을 중지해야 한다”면서 이들의 시위로 “분수를 청소하는 데 30만ℓ의 물이 낭비될 것”이라 비판했다.
한편,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에 있던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수해 복구를 지휘하기 위해 하루 일찍 자국으로 돌아왔다. 이번 시위는 멜로니 총리가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에 도착한 뒤 벌어졌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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