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28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국제 안전한 임신중지의 날’을 맞아 여성들이 합법적 임신중지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중남미에서 두번째로 큰 국가 멕시코가 연방 차원에서 임신중지를 비범죄화했다. 지난해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권을 인정해온 판례를 49년 만에 폐기한 것과 대조적이다.
멕시코 대법원은 6일 “연방 형법상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법률 체계는 위헌이다. 여성과 임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라고 판결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전했다. 일부 주에 존재하는 임신중지 금지 규정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이날 판결에 따라 멕시코 전국 31개주와 1개 특별행정구역(멕시코시티) 모두에서 임신중지가 비범죄화됐다.
멕시코 대법원은 2년 전에도 임신중지를 범죄화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지난 2021년 멕시코 북부 코아후일라주에서 임신중지를 범죄로 규정해 징역 3년형까지 처할 수 있도록 한 법률 조항에 대해 만장일치로 무효화했다. 당시 대법원의 판결은 코아후일라주에만 영향을 미쳤지만 역사적 판례가 됐으며, 2년 후인 이날 연방 차원의 비범죄화 판결이 나오는 결과로 이어졌다.
멕시코 시민사회는 이날 판결로 임신중지 당사자와 이를 도운 의료 종사자가 형사 고발당하지 않게 됐다며 환영했다. 멕시코 국립여성연구소는 엑스(옛 트위터)에 “오늘은 멕시코 여성들의 승리와 정의의 날”이라며 환영했다. 멕시코는 국민의 약 89%가 가톨릭 신자이지만 최근 멕시코에서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은 감소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이날 판결을 반기며 ‘그린 웨이브’를 상징하는 초록색 하트 문양을 게재하는 물결이 일고 있다. 그린 웨이브는 차별이나 폭력, 강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임신·출산 여부와 시기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뜻하는 ‘재생산권’을 위한 운동이다. 최근 몇 년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그린 웨이브 운동이 거세게 일며 2020년 아르헨티나가 임신 14주 이내 임신중지를 합법화했고, 2022년 콜롬비아도 임신 24주 이내에서 합법화했다. 쿠바, 우루과이 등에서도 임신중지가 합법이다. 이날 영국 가디언은 “이날 판결은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재생산권 운동의 승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가장 최근에 나온 판결”이라 설명했다.
지난해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24주까지 임신중지권을 보장해온 ‘로 대 웨이드’ 판례를 49년 만에 폐기하며 미국 전역에서 임신중지권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멕시코에서는 연방 차원의 비범죄화 판결이 나왔다. 시엔엔(CNN)은 이날 “멕시코가 미국 거주자들에게 예상치 못한 안식처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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