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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세계는 지금 ‘코로나 전쟁터’

등록 2020-03-19 18:27수정 2020-03-20 02:08

미, 국방물자생산법 발동하고
유럽서도 전시 방불 극약처방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에 위치한 거대 예수석상에 18일(현지시각) 코로나19 감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국기가 투사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로이터 연합뉴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코르코바두 언덕에 위치한 거대 예수석상에 18일(현지시각) 코로나19 감염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국기가 투사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로이터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적(코로나19)과 전쟁하고 있다”며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물자공급을 늘리기 위해 만들었던 ‘국방물자생산법’(Defense Production Act)을 발동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이 ‘전시체제’를 방불케 하는 극약 처방을 잇달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구성원들과 함께 연 기자회견에서 자신을 “전시 대통령”이라고 표현하며,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법이 발동되면 대통령이 민간기업에 안보상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도록 명령할 수 있고, 민간물자를 징발할 수도 있다. 코로나19의 가파른 확산세 속에 환자 수용 능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해서라도 마스크와 인공호흡기 등 필요한 물품의 생산과 공급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라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아울러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뉴욕주와 서부에 해군 병원선을 한대씩 배치하겠다고도 했다. 병원들이 코로나19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다른 환자들을 병원선에 분산 수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날 회견에 함께 나온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국방부는 전략비축고에서 500만개의 N95 마스크와 개인보호장비, 2000개의 인공호흡기를 보건복지부에 제공해 배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기자회견 도중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 기자회견 도중 두 손을 마주 잡고 있다. 워싱턴/AFP 연합뉴스
전시체제에 준하는 이런 조처들은 현재 코로나19의 확산 속도를 볼 때 미국 의료시스템으로는 감당이 안 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시엔엔>(CNN) 방송에 따르면, 이날 미국의 확진자 수는 전날보다 2700여명 뛴 9415명(사망 149명)으로 집계되는 등 미국 내 확산 속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인공호흡기 및 병상 등 의료장비는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코로나19 사태가 지속되면 미국에서만 약 100만개의 인공호흡기가 필요하다고 전망했지만, 존스홉킨스 건강보안센터의 지난달 집계를 보면, 미국 내 병원의 인공호흡기 비축량은 16만개, 국가비축고 분량은 8900개에 불과하다. 병실 수 역시 201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를 보면 미국은 1000명당 병상 수가 2.8로, 회원국 평균(4.7)보다 낮다. 집중치료실의 경우 미국은 9만5000개의 병상을 갖고 있는데, 일부 전문가들은 코로나19가 전면적으로 퍼지면 7만5000~10만개가 모자랄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현장에선 검사키트 부족 현상이 확인되고 있다. 이날 워싱턴 권역에 처음으로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설치된 ‘드라이브스루’ 검사장에 가보니, 차를 타고 들어섰다가 되돌려 보내지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띄었다. 검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버지니아병원센터의 멜로디 디커슨 수석부회장은 기자에게 “의사로부터 검사 명령을 받고 이곳에 예약을 한 사람들만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검사소는 하루 검사 분량 또한 6시간에 걸쳐 60명 수준으로 제한했다. 현재 모든 주에서 검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주지사들은 키트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마스크는 시중에서 구경하기도 힘들어졌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이동제한령에 따라 집 안에 머물고 있는 시민들이 ‘발코니 플래시몹’ 시간에 맞춰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웃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에서 이동제한령에 따라 집 안에 머물고 있는 시민들이 ‘발코니 플래시몹’ 시간에 맞춰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웃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코로나19 누적 확진자와 사망자 수 모두 중국을 넘어선 유럽은 이미 전시나 다름없다. 전국민 이동제한은 물론, 국경 폐쇄, 학교와 상점 운영 중단 등 온갖 처방이 다 동원된 상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텔레비전 대국민 연설을 통해 “사태가 심각하다. 통일 이후, 아니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라고 강조했다.

유럽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가장 많은 이탈리아에선 정부가 새달 3일까지로 예정된 전국 이동제한령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가격리 등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조깅을 포함한 외부 스포츠 활동을 금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빈첸초 스파다포라 체육부 장관은 “집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강제로 그렇게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탈리아에선 이날만 475명이 목숨을 잃어 하루 사망자 최다를 기록(누적 사망자 2978명, 누적 확진자 3만5713명)하는 등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피해가 집중된 북부 롬바르디아주에선 병상·의료장비 및 의료진 부족 사태로 “이 상태로 가면 조만간 신규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아틸리오 폰타나 주지사)이라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롬바르디아와 에밀리아로마냐주는 급한 대로 축구장에 천막을 설치해 임시 병실로 쓰기로 했다. 밀라노는 컨벤션센터를 400여개의 병상을 갖춘 의료시설로 바꾸는 중이며, 북서부 항구도시 제노바에선 정박 중인 페리선을 임시 병원으로 쓰기로 하고 개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프랑스 경찰들이 이동제한령 실시 이틀째인 18일(현지시각) 벨기에와의 접경지역인 와트를로에서 차량 검문을 하고 있다. 와트를로/신화 연합뉴스
프랑스 경찰들이 이동제한령 실시 이틀째인 18일(현지시각) 벨기에와의 접경지역인 와트를로에서 차량 검문을 하고 있다. 와트를로/신화 연합뉴스
영국에선 조만간 수도 런던을 봉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시엔엔> 등 외신들이 전했다. 특히 코로나19를 옮길 위험이 있는 사람을 경찰이 구금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정부에 필요한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의 비상법안을 19일 의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앞서 스페인 정부도 지난 16일 코로나19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민간병원과 의료서비스와 관련된 모든 시설을 국가 주도로 운영하기로 한 바 있다.

경찰관 10만명이 투입돼 이동금지령 단속에 나선 프랑스에선 이틀째인 이날 전국에서 4095명이 불필요한 이동으로 최소 38유로(약 5만원)에서 최대 135유로(약 18만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보도했다. 크리스토프 카스타네르 내무장관은 아울러 “과태료가 최대 375유로(약 51만원)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정애 기자,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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