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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툰베리와 초등학생의 호소? 그것은 명령이다 / 이재영

등록 2020-02-12 18:19수정 2020-02-13 02:36

이재영 ㅣ 공주대학교 환경교육과 교수·국가환경교육센터장

나는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 연설에서 ‘하우 데어 유’(How dare you…, 감히 당신들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솔직히 깜짝 놀랐다. 세계의 내로라하는 리더들에게 온실가스 감축을 ‘호소’하면서 저렇게 건방진 말투를 쓰다니….

그러나 툰베리의 이 말은 계속 내 마음속 깊은 곳을 휘저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뭔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질서 혹은 규칙, 그래서 너무나 자연스럽고 그래서 정상적이라고까지 느끼지만 의식적으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그 무엇에 균열이 생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세대 간의 역할, 그에 따른 예의, 도덕, 규범과 같은 것들이 송두리째 깨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근대 이후의 어른 세대는 보살핌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노동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 이전에는 아동노동이 훨씬 강했다. 푸코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근대의 학교가 공장에서 일할 아동들의 훈육 과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이제 아동노동은 법적으로도 금지되어 있고, 근대적 아동은 보살핌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어른의 통제, 지도, 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어른은 갑이고, 아이는 을이다. 그리고 그 두 세대 간에는 강력한 역할 분담에 대응하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어 왔다.

그런데 기후위기와 환경재난을 겪으면서 오늘날의 어른 세대는 아이(미래 혹은 다음) 세대의 미래를 망치는 존재로 규정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국가기후복원센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인류의 55%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2050년이 되면 사람이 살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지금 15살인 내 아들은 그때가 되어도 고작 45살이다. 아이들은 미래에도 자신이 존재할 권리를 주장하면서 어른들과의 위계적 관계를 해체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툰베리의 연설이 그런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기표라고 생각한다. 어제까지 존댓말을 쓰던 사람이 갑자기 반말을 할 때 느낄 당혹감을 우리는 너무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나.

툰베리만이 아니다. 세상에는 무수한 툰베리들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있다. 최근 <한겨레> 시론을 통해 초등학생이 기후위기에 대한 어른들의 책임을 따져 물었다. 영국의 16살 청년 일라이자 매켄지잭슨은 최근 국회의사당 밖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그는 툰베리의 ‘미래 청소년 운동을 위한 금요일’의 일원이며, 젊은 기후운동가이다. 그는 콜롬비아의 석탄 생산을 중단하기 위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많은 일자리 때문에 어려운 문제지만, 그 영역을 넘어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후위기와 환경재난의 시대, 이제 어른과 아이의 관계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지도 모른다. 남녀 사이의 차별보다 더 뿌리 깊은 차별, 바로 어른과 아이 사이의 차별이 도마 위에 올랐고, 툰베리는 그 선을 넘었다. 이번 총선에서 새롭게 투표권을 갖게 된 18살 청소년들은 어떤 미래를 선택하려고 할까? 혹시 그들은 투표지 위 어디에도 선택할 미래가 없다고 느끼지 않을까?

툰베리는 어린아이로서 어른에게 ‘호소’한 게 아니다. 미래 세대로서 현세대에게 명령한 것이다.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어른들은 미래 세대에 의해 어떤 처분을 받게 될 것인지 깊이 고민해보기 바란다. 차기 교육과정의 핵심이 4차 산업혁명이고 인공지능이라고? 정말 그럴까? 차기 교육과정의 핵심은 우리의 내일을 포함한 미래 세대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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