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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툰베리의 종말론 / 전범선

등록 2020-01-31 18:12수정 2020-02-01 13:30

전범선 ㅣ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이번 겨울은 유난히 따뜻했다. 눈도 거의 안 왔다. 설날에 뵌 어머니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옛날에는 구정에 추워서 설빔해 입고 그랬는데 요즘은 완전 봄 날씨네.” 화천 산천어 축제, 평창 송어 축제 등도 얼음이 안 얼어서 한참 연기되었다. 동물 학살을 오락으로 즐기는 축제가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한편으로는 기후 위기가 피부로 느껴져 두렵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는 아직 불타고 있다. 산불은 원래 주기적으로 발생하지만, 온난화가 그 빈도와 강도를 부채질하고 있다. 10억 마리의 동물이 죽었다. 불에 그을린 캥거루의 모습은 지옥 같다.

툰베리는 올해도 다보스에 가서 외쳤다. “우리 집이 불타고 있어요!” 집에 불이 나면 어찌해야 하는가? 모든 일을 멈추고 불부터 꺼야 한다. 좌우 논리는 무의미하다. 집이 다 무너지게 생겼는데 밥을 어떻게 짓고 어떻게 나눠 먹을지가 무슨 소용인가? 툰베리는 세대 간의 전쟁을 선포했다. 지속 불가능한 지구를 물려준 기성세대를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우리는 제6차 대멸종을 목도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지금 당장 탄소 배출을 멈추지 않으면 십년 안에 불가역적인 연쇄반응이 일어날 것이다.

트럼프는 종말론적인 헛소리라며 비웃었다. 미국 재무부 장관 므누신은 툰베리보고 학교 가서 공부나 더 하고 오라고 했다. (툰베리는 17살이고, 청소년 기후행동의 일환으로 동맹휴학을 제안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툰베리 편이다. 사실 그들은 수십년 전부터 한목소리였다. 이대로 가면 큰일 난다고 꾸준히 경고했다.

2015년 파리협정은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 따르면 앞으로 이산화탄소를 420기가톤 더 방출하면, 1.5도 상승을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67%였다. 그런데 2019년 인류는 또다시 역사상 최대 탄소 배출량을 경신했다. 1.5도까지 남은 탄소 예산은 급격히 소진되고 있다.

만약 2도가 올라가면 그 여파는 어마어마하다. 해수면이 56㎝ 높아지고, 더운 날이 25% 증가한다. 대한민국은 아열대 기후가 되고, 호주 산불 같은 기후 재앙은 일상이 된다. 사실상 이미 막기 힘들어 보인다. 이제는 3~5도 상승도 불가피하다는 말이 나온다. 묵시록 같은 이야기가 과학의 언어로 들려오니 처음에는 감흥이 없다가 점점 섬뜩해진다.

내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배운 게 한 가지 있다면, 종말론은 믿지 말라는 것이다. 기독교의 천년왕국설부터 마르크스의 공산주의까지, 역사의 끝이 닥쳐온다는 호들갑은 늘 거짓으로 판명됐다. 당시에는 선지자가 아무리 카리스마 있게 대중을 현혹하고 공신력 있는 성직자들이 뒷받침한다 해도, 후대에 돌이켜보면 종말론은 언제나 우습기 마련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야말로 오늘날의 성직자요, 툰베리는 스웨덴에서 온 메시아 아닌가. 기후운동은 멸망의 공포와 천지개벽을 파는 또 하나의 급진 세력일 뿐. 자위해보지만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다. 종말론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부정하고 평소처럼 살거나, 긍정하고 구원을 찾거나. 나는 구제받을 희망이 보이지 않지만, 기후위기를 부정할 용기도 없다. 아, 말세로다.

뭐라도 해본다.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디젤차를 전기차로 바꿔본다. 혼자 이러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총선 공약을 들여다본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 세계 4위, ‘기후 악당’ 국가답게 여야 막론하고 시원한 대책이 없다.

툰베리의 말처럼 청년들이 나서야 한다. 멸종저항 운동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책방 ‘풀무질’에서도 멸종저항을 개시한다. 일단 모여서 암담한 우리의 미래를 직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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