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석균 ㅣ 가정의학과 의사·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대표
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가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 징계심의 대상이 됐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이
<한겨레> ‘왜냐면’(4월14일치)에 실린 김윤 교수의 글에 대해 “허위사실” 유포라며, 명예 훼손과 질서 문란으로 의사협회 윤리위에 징계심의를 요청했다.
문제가 된 김윤 교수의 글은 “대구·경북에서 병상이 부족해 환자가 사망하였거나 다른 지역 병원으로 이송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이유는 즉각 동원할 수 있는 공공병원 병상은 적었던 반면, 대부분의 병상을 보유한 민간병원은 코로나19 환자에게 병상을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며, “중앙정부는 민간병원을 동원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 공공병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나는 이 글이 왜 의사들의 명예를 훼손하고 어떤 질서를 문란하게 한 것인지 모르겠다.
김윤 교수 글은 ‘허위사실’이 아니다. 일어난 사실을 적시했을 뿐이다. 대구·경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가장 많은, 4만개의 병상을 가지고 있다. 공공병원 병상은 전체 병상 중 10%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공공병원들이 대구·경북에서 발생한 환자 4분의 3을 봤다. 당시 대구의료원, 대구보훈병원, 대구산재의료원, 국군대구병원, 멀리는 포항의료원까지 공공병원은 입원환자를 비우면서까지 코로나19 환자를 우선으로 도맡아 치료했다. 환자 발생 초기에 민간병원에서 ‘병상을 내주지 않아’, 2300여명의 환자들이 어떤 치료시설도 가지 못했다. 결국 경남지역 국공립 병원들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전환했고, 충남, 충북, 서울 등지의 국공립 병원들이 나서서야 대구·경북 환자를 입원시켜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75명의 사망자 중 17명(23%)은 병원에 입원도 못 하고 사망했다. 이것이 사실이 아닌가?
대구의 민간병원도 상황변화에 따라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나섰다. 그러나 6000여명 환자 발생에 주로 3개 병원에서만 400병상, 나중에야 600여 병상만이 동원 가능했다는 점은 엄연한 사실이다.
둘째, 김윤 교수의 글이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는가? 대구 사태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국공립 병원 의료인들과 현장으로 파견 나온 의료인들 역시 의사협회 회원들이다. 또 김윤 교수의 글 어디에도 의사 개인의 문제를 제기한 구절은 없다.
나도 의사다. 나는 내 명예를 훼손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최대집 회장이라고 생각한다. 의사협회장은 의학적으로 근거 없는 ‘중국인 입국금지’라는 인종차별 요구를 공식 석상에서 수차례 했다. 최대집 회장은 대구 클러스터 발병이 이미 지역감염으로 번진 이후인 1월26일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처음 주장했고, 최근까지도 이를 올바른 주장이었다고 하고 있다. 당시에 중국에서 온 입국자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최대집 회장은 지난 총선 기간에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와 만나 중국인 입국금지를 함께 주장했고, 4월6일 유세장에서 황교안 대표 지지방문을 하는 등 정치적으로 매우 편향된 모습을 보였다. 누가 보아도 의학과 의사협회를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는 수준 이하의 정치적 행보였다.
의사협회는 현재 한국 제도상 모든 의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의무 가입제로 돼 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의학적이고 과학적인 정책을 우선해야 하는 의사협회장이 근거도 없이 편향적 정치 행위를 한 것이야말로 의사 집단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닌가? 그것도 의료인들이 환자 치료에 사투를 벌이는 팬데믹 상황에서 말이다. 최대집 회장으로 인해 내 직업적 소명이 더 이상 왜곡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의사협회 집행부와 윤리위는 김윤 교수에 대한 마녀사냥에 편승하지 말기를 바란다. 협회 일부 집행부와 다른 입장에서 학술적 주장을 한다고 ‘질서 문란’이나 ‘명예 훼손’ 징계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
최대집 회장은 ‘중국인 입국금지’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정부에 코로나19 감염과 관련된 학술적 조언을 했다는 이유로 이재갑 교수 등을 ‘비선 의사’라든지 ‘십상시’ 등의 표현을 써서 비난한 바 있다.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인 빨갱이 사냥이다. 이들은 감염학회 중진 교수들로 2015년 메르스 유행 시기에도 전문가 자문 역할을 했다.
칼 세이건은 비과학적 주장이 난무하는 상황을 중세와 다를 바 없는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라고 통탄했다. ‘전국민 건강보험은 사회주의’라고 주장하는 최대집 회장의 눈에는 공공병원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갈 데 없이 기다리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눈에는, 재벌 병원의 그 많은 병상을 코로나 환자들 입원 치료에 사용하지 못하는 현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김윤 교수의 글이 여러 문제를 담기엔 너무 짧았다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지금 우리는 언제 닥칠지 모르는 코로나19 의료붕괴 위기의 일상을 살고 있다. 이 시기 의사협회장이 할 일은 시대착오적인 마녀사냥이 아니다. 정치적 편향 없이 의료붕괴를 막기 위해 회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다. 코로나19로부터 시민을 구하고 의료인의 안전을 지키는 일, 그게 지금 의사협회가 골몰해야 할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