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 지명된 윤석열 전 검찰총장. 공동취재사진
손원제|논설위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홍준표 의원을 꺾은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경선은 ‘당심’이 ‘민심’을 누른 결과로 해석됐다. 이후 전개된 상황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윤 후보 선출 뒤 사흘 새 당원 6500여명이 탈당했는데, 이중 2030이 75%였다. 민심을 깔아뭉갠 당심에서도 파열음이 빚어진 것이다.
이들 2030은 국민의힘을 ‘노인의힘’, ‘구태의힘’이라 부르면서 “6070 어르신들 데리고 정권교체 잘 해보시라”는 작별 인사를 남긴 채 떠나갔다. 국민의힘 주류는 역선택을 노렸던 세력의 이탈일 뿐이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윤 후보가 경선 막판에 “위장당원들이 엄청 가입했다”고 말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그러나 이런 인식으로는 청년세대와 노인세대의 주도권 경쟁이라는, 한국 보수정당 초유의 정치적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 ‘세대 투표’ 경향의 변화가 꿈틀대는 이번 대선의 흐름도 포착하기 어렵다.
세대 투표는 2002년 이래 대선 향방을 좌우하는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어느 때보다 복잡한 양상을 띤다. 2030의 움직임이 과거 패턴과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2030은 대체로 지금 4050과 동조하는 흐름을 보여왔다. 2002년엔 이들 자신이 2030으로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몰아줬다. 2012년에는 3040이 된 이들과 당시 20대의 지지가 문재인 후보에게 쏠렸지만, 고령층이 더 압도적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바람에 108만표 차로 졌다.
2017년 대선까지 유효했던 ‘2030·4050 연합’ 대 ‘60대 이상’ 세대 경쟁 구도는, ‘코로나 변수’가 지배한 4·15 총선을 예외로 치면, 4·7 재보궐 선거에서 크게 흔들렸다. 전임 시장 성추행 파문으로 2030 여성의 여당 이탈이 가시화했고, 국민의힘이 2030 남성 공략에 집중한 것도 한몫했다.
만약 2030이 60대 이상의 강고한 지지를 받는 국민의힘에 마음을 연다면, 이번 대선은 해보나마나다. 그러나 국민의힘 경선 결과는 이 새로운 가능성에 일단 재를 뿌린 셈이 됐다.
물론 최근 국민의힘에 입당한 2030 당원 다수가 탈당한 건 아니다. 여론조사에서도 2030 일부는 윤 후보 지지로 갈아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윤 후보는 경선 당시 ‘398 후보’(세대별 지지율 20대 3%, 30대 9%, 40대 8%)라는 조롱을 들었다. 지금은 2030 지지율도 20%대 안팎까지 올랐다.
그러나 컨벤션 효과를 넘어 대선 승리를 견인할 청년·노년 연합 구도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다. 기본적으로 60대 이상과 2030은 정서와 가치관이 몽땅 충돌한다. 그나마 이걸 묶어줄 가능성을 보여준 후보를 60대 이상이 똘똘 뭉쳐 떨어뜨렸다. ‘신 세대전쟁’의 서막을 스스로 연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경선 승리는 오히려 ‘윤석열의 덫’이 될 가능성이 크다.
2030은 경제와 민주주의 모두 ‘선진국’에서 나고 자란 세대다. ‘중진국’을 겪고 민주화를 성취한 4050도 이들에겐 말 안 통하는 ‘꼰대’다. 60대 이상은 상상의 영역에 속해 있을 것이다. 그나마 홍준표는 직설과 유머, 유튜브를 통한 꾸준한 소통으로 2030 남성 일부의 열광적 지지를 끌어냈지만, 윤석열은 권위주의적인 태도와 시대착오적 인식을 번번이 드러내 외면을 받았다.
보수 매체들은 ‘586’의 독주와 2030과의 갈등을 집요하게 짚어왔다. 그러나 사실 60대 이상이야말로 길고 질기게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세대임을 놓쳐선 안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거의 모든 선거에서 지금의 60대 이상은 압도적으로 보수를 지지했다. 지역 변수를 빼면 보수 우위의 세대 특성은 더욱 확고하다. 고령화 진전으로 이들의 정치적 퇴장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61살 윤 후보가 지난 3월 101살 철학 교수를 만난 건 상징적이다. 40년 시차를 넘어 성인이 될 때까지 둘의 정치적 경험엔 유사성이 더 크다. ‘후진국’형 권위주의와 저항의 부재가 공통의 시대적 공기였다. 60대 이상을 ‘60100 세대’라고 불러도 과도한 단순화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노인의힘’이 리셋 버튼을 누르면서, 세대 투표 경쟁은 다시 원점에 섰다. 윤 후보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어쩌면 최대치의 조기 누설일 수 있다. 세대론 관점에선, 경쟁자에게 기회의 창이 닫힌 건 아니라는 얘기다. 진짜 실력과 비전을 보여주는 쪽이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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