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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유류세 인하’가 최선일까? / 정남구

등록 2022-06-22 14:08수정 2022-06-23 02:37

착한 사람이 큰 시련을 당할 때 우리는 “하늘도 무심하시지”라고 한탄한다. 재난이 닥쳤을 때, 힘없고 가난한 이들이 훨씬 큰 고통을 겪는 걸 보면 하늘은 정말 무심하다.

1912년 4월10일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발해 미국 뉴욕으로 가던 타이태닉호가 북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해 끝내 침몰했다. 승객 832명을 포함해 1517명이 사망했는데, 선실별 생존자 비율을 보면 1등실은 61%, 2등실은 42%, 3등실은 24%였다. 부자일수록 덜 위험한 선실에 있었고, 구명의 기회는 많았던 까닭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전이 핵폭주를 했다. 원전 주변 지역에 살던 많은 이들이 긴급피난 과정에서 사망하고, 집과 생활의 터전을 잃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은 250㎞ 떨어진 도쿄에서 썼다. 그러나 원전 사고의 피해는 외지고 가난한 마을이었기에 보조금을 바라고 위험한 원전을 유치했던 후쿠시마 사람들의 몫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미국에서 흑인, 히스패닉계의 피해가 백인보다 훨씬 컸던 것도 ‘재난 불평등’의 사례다. <재난 불평등-왜 재난은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혹할까>를 쓴 존 머터는 “재난의 피해 규모는 재난의 물리적 크기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격차, 기존의 부조리, 불평등이 그 크기를 결정한다”고 했다.

인류가 코로나 위기를 이제 극복하는가 싶더니, 인플레이션이 새로운 경제 재난으로 닥쳐오고 있다. 물가 상승은 소득이 적고, 소득에서 소비의 비중은 높은 계층에게 가장 큰 타격을 가한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를 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 소득 하위 20% 계층은 지난해 171만원의 월 소득 가운데 96.4%(164만9천원)를 소비지출에 쓰고, 상위 20% 계층은 1078만원의 소득 가운데 43.4%(467만원)만 소비지출에 썼다. 올해 1분기 물가는 3.8% 올랐다. 하위 20% 계층은 장바구니에서 적잖은 상품을 덜어내야 했을 것이다.

정부의 고물가 대응은 ‘유류세 인하’에 집중되고 있다. 지난해 소득 하위 20% 계층이 운송연료비로 지출한 돈은 월 5만2606원, 상위 20% 계층은 18만1035원이었다. 누가 얼마나 감세 혜택을 받을까? 정말 무심한 것은 하늘이 아니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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