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어 ‘문’(門)은 ‘어느 분야’를 뜻하기도 한다. 그 분야에 오로지 매달려 많은 경험과 깊은 지식을 쌓은 사람을 ‘전문가’라고 한다. 반대로 그 분야를 제대로 접한 적이 없는 사람은 ‘문외한’(門外漢)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무뇌한’이라고 쓰는 사람도 꽤 있다.
캐나다의 경영 평론가 맬컴 글래드웰은 2008년에 쓴 <아웃라이어>란 책에서 안데르스 에릭손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교수가 1993년 발표한 논문에 처음 등장하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루 3시간씩 한다면 10년이 걸리는 일이다.
이들의 견해는 상당히 인정받고 있지만, 악기 연주자나 체스 선수의 사례연구로 이견을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현실엔 2년 만에 최고 실력에 도달한 체스 선수가 있는 반면, 1만 시간을 연습했어도 중급 정도밖에 도달하지 못한 선수도 많다. 꾸준한 연습의 효과가 크지만, 실력엔 지능, 성격, 유전자, 연습을 시작한 연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반론이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덴마크 물리학자 닐스 보어(1885~1962)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는 전문가를 “아주 좁은 범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오류를 경험한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축적의 시간이 아니라, 축적의 내용과 깊이를 강조한 것이다.
한국에 살면 입시와 부동산에 다 전문가가 된다는 말이 있다. 큰 관심 속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제도가 수시로 변하는 것을 겪다 보면 다들 한마디씩 논평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춘다는 것이다. 물론 비유해서 하는 말이고, 자식 키우고 집 사고파는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스스로 전문가라고 칭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대학 입시 전문가’ 반열에 올랐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불과 150일가량 앞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수능 출제 방식을 질타해 큰 혼선을 빚고 있다. 잘 알지 못하는 일에 아는 척한다는 비판이 일자,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은 검찰 초년생인 시보 때부터 수십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입시 비리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봤고, 특히 조국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의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다.” 유레카! 글래드웰이나 보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전문가가 되는 길’이 있다는 것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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