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이 19일 ‘사교육 경감 방안’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을 출제하지 않고 적정 난이도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오는 9월 모의평가부터 킬러 문항이 제외될 것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언급도 뒤따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약자인 우리 아이들을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라며, 킬러 문항 출제를 강하게 비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정은 킬러 문항 출제 대신 어떤 방법으로 변별력을 확보할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을 제시하진 못했다. 윤 대통령의 즉흥적인 ‘공정 수능’ 드라이브로 일선 교육현장이 큰 혼돈에 빠져들고 있는데도, 집권여당은 “조국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한” 경력을 근거로 “대입제도에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며 엄호하는 데 급급했다.
수능의 킬러 문항 출제는 최근에 새로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학령 인구 감소에도 외려 더 심화되고 있는 학벌 사회와 대입 경쟁의 부산물이다. 수능 점수로 상위권 학생들 줄세우기를 하려다 보니, 수험생의 99%는 풀기 어려운 최고 난도 문제를 출제하는 관행이 굳어져온 것이다. 따라서 경쟁을 완화하고 입시제도를 개편할 근본적인 대책 없이, 시험 문제만 바꾼다고 당정이 기대하는 사교육 경감이 가능한지 의문이다. 벌써부터 킬러 문항이 출제되지 않으면 그 자리를 준킬러 문항이 채우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더군다나 당정은 ‘고교 서열화’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2025년부터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했던 자사고·외고·국제고를 다시 존치하는 방안을 이날 공식화했다. 학생들 간 경쟁을 더 부추긴다는 점에서, 사교육 경감이라는 정책 목표에 역행하는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최근 불거진 6월 모의평가 난이도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날 전격 사임했다. 올해 수능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수능을 주관하는 출제기관은 감사를 받을 예정이고 해당 기관장은 공석이 된 형국이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혼란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지만, 정부·여당은 ‘수능 출제기법 고도화’와 ‘공교육 과정 내 문제 출제’라는 실체가 모호한 실행 계획만 언급하고 있다. 이를 놓칠세라 입시학원들은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한다’며 학생들을 사교육으로 유인하고 있다. 대입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어디로 향할지 모르게 되면, 사교육 의존도는 그만큼 높아지기 마련이다. 지금이라도 단편적이고 즉흥적인 정책 추진을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