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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건전재정”과 “3% 성장” 둘 다 아니다

등록 2023-11-14 09:00수정 2023-11-14 09:22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선진국 대한민국, 일장춘몽이었나? 한국 경제가 날개가 없는 것처럼 추락하고 있다. 올해 추정치를 포함해 지난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2.47%로 3%를 넘지 못했다. 코로나 기저효과가 있었던 2021년을 제외하면 2014년부터 올해까지 경제성장률이 3%를 넘었던 해는 2014년과 2017년 두 해뿐이었다. 문제는 상황이 더 나빠질 것 같다는 것이다. 202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2060년 한국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이 38개 회원국 중 최하위인 0.8%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오이시디 평균인 1.1%는 물론이고, 30년 넘게 장기 불황에 허덕이는 일본의 1.0%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0%대 성장률은 우리 사회가 세대 갈등, 불평등, 저출생, 고령화 등 심각해지는 사회경제적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을 상실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복지국가를 공부하는 필자가 주제넘게 성장률을 걱정하는 이유이다. 물론 우리는 탈성장을 추구하며, 성장 없는 복지 체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길은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지금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건전재정”만이 국내외 위기를 풀어갈 해법이라고 주장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의 건전재정 기조를 옳은 방향이라고 호평”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반면 이재명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최소 3% 성장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여당이 “구체적 정책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이 없다면 얼마든지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겠다”고도 했다. 민생 해법을 둘러싸고 정부·여당과 민주당이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형국이다.

뭐가 옳은 것일까?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어 제대로 된 정책 논의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 먼저 정부·여당의 건전재정론을 보자. 나라 살림을 건전하게 운영하겠다는 건전재정론은 ‘원칙적’으로 잘못된 것이 없다. 국제통화기금이 건전재정을 호평한 이유도 바로 원칙적으로 건전재정이 바람직하기 때문일 것이다.

쟁점은 그 건전재정이라는 것을 언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재정을 풀어 경기를 진작시키는 것은 사회복지를 전공한 필자도 알 만큼 상식에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래서 민생 경제가 매우 어려운 지금, 정부·여당이 대규모 감세와 건전재정을 통해 민생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는 것은 그 논리가 괴이하다. 경제위기에 처한 국가가 부자감세와 정부지출 감축으로 민생을 회복시켰다는 이야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이 잘 지적했듯이, 레이건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이후 미국 경제가 깜짝 호황(1982~1984년)을 누린 것은 감세 때문이 아니라, 금융 완화 조처 때문이었다. 더욱이 대부분의 감세가 부자에게 좋고 서민에게 나쁘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경제가 어려운데도 정부가 돈을 풀지 않으면, 가계 부채가 늘어난다는 것도 상식이다. 윤석열식 건전재정이 민생 회복 정책이 아니라 민생 폭망 정책인 이유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민생경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2일 국회에서 ‘민생경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면 민주당의 “3% 성장”이 답일까? 경제가 성숙 단계에 들어선 선진국은 2% 성장도 준수하다. 매년 2%씩 성장하면 35년 뒤 경제 규모가 두배가 되는데, 3%씩 성장하면 그 기간이 24년으로 앞당겨진다. 3% 성장은 대단한 목표다.

하지만 여기서도 쟁점은 3% 성장이 아니다. 어떤 성장인지, 또 그 성장의 성과를 어떻게 나눌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90~2019년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겪으면서도 연평균 5.2%라는 높은 성장률을 유지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선진국에 진입했고 대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그 30년은 불평등과 자살률이 폭증했고, 출산율은 급감하면서 한국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았던 시기였다. 최고의 시간이자, 최악의 시간이었던 셈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대기업과 소수에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성장인지, 성장의 과실을 어떻게 (재)분배할지 잘 보이지 않는 민주당의 “3% 성장”이 공허한 이유이다.

여당의 건전재정과 민주당의 3% 성장으론 민생 위기를 풀 수 없다. 다시 숙고하고 정확히 질문해,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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