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합장을 하고 다섯 걸음을 내디딘 후 팔다리를 곧게 펴 아스팔트에 몸을 포갰다. 온도계는 38도, 아스팔트 열기는 50도를 오르내렸다. 오체투지 행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윤충렬씨는 아스팔트 불덩이에 오체를 던졌다. 111년 만의 더위보다 정리해고의 폭염이 더 큰 재난이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쌍용차 대법원 판결이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에 기여했다.”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청와대와 협상 전략을 정리한 문건은 충격이었다. 국민의 권리와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대법원. 그는 서초동으로 달려가 농성을 시작했다. 양승태와 대법관들은 재판 거래가 없었다고 발뺌했지만, 장막 뒤편 검은 법복이 벌인 뒷거래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고법원 제물로 바친 사건 중 케이티엑스(KTX) 승무원과 쌍용차, 콜트콜텍 정리해고를 주목하는 이유는 노동자에게 미칠 파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케이티엑스 승무원.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지상의 스튜어디스’라고 홍보한 직장은 사기였다. 승무원들의 사용자는 자회사인 한국철도유통(코레일관광개발)이었고, 월급은 150만원 남짓이었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다 해고된 250명이 코레일을 상대로 정규직 인정 소송(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냈다. 1, 2심 재판부는 철도유통을 독립성이 없는 노무대행기관 즉 유령회사라고 봤고, 코레일이 채용에서 평가까지 모든 업무를 지휘·명령했기 때문에 입사일부터 정규직으로 인정되는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2015년 2월 대법원은 “열차팀장과 승무원 업무가 구분됐고, 자회사가 독자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다”며 고법 판결을 파기했다. 예상 파기, 상식 파기였다.

비정규직 판결의 대상은 해고승무원 250명의 수천, 수만 배에 이른다. 삼성전자서비스 8천명을 비롯해 설치·수리기사들의 소송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판례가 됐다. 유령회사를 세워 채용한 후 비정규직으로 실컷 부려먹다 해고해도 법적 제재를 받지 않게 한 판결. 현대차 불법파견 소송으로 골치를 앓던 대기업의 고민을 날려준 희대의 판결이었다. 재판 직후 삼표시멘트 사용자들이 석회석을 발파하는 비정규직과 케이티엑스 승무원의 노동이 동일한 과정이라고 주장할 지경이었다.

쌍용차와 콜텍 대법원 판결은 정리해고의 핵심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무장해제시켰다. 대전공장을 폐쇄한 콜텍 사건에서 고등법원은 “재무구조가 건실하고 수익성도 양호해 대전공장 손실이 경영상 긴박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장래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쌍용차 대법원 판결은 “인원 삭감 및 규모에 관한 객관적 합리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해”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2심 판결을 뒤엎었다. 장래 위기가 없는 회사가 있을 리 만무, 기업들은 환호했다. 긴박하다=매우 다급하고 절박하다. 국어사전을 농락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사법부였다.

비정규직 착취와 정리해고의 무한자유를 회장님들께 선물한 양승태 판결은 박근혜와 재벌 총수의 비밀회동이 있던 2014~2015년에 집중됐다.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의 쌍두마차, 특별법과 특별재판부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일이 ‘긴박’하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매일 새벽 대한문에서 119배를 올린다. 30명의 희생자를 추모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걷고 있는 해고자 119명의 긴급구제를 위해서만이 아니다. 범죄의 소굴이 된 사법부. 정의의 혈관이 막히고 인권의 심장이 멎어버린 법원의 심폐소생을 염원하는 절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