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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선비’들의 부동산 정책? / 김지훈

등록 2018-09-16 17:51수정 2018-09-17 15:42

김지훈
책지성팀 기자

“사실 부동산이란 게 더러운 게임 아니냐고요. 그런 일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내 말에 아내는 폭발해 버렸다. “그럼 너 혼자 선비처럼 고고하게 이상주의자로 사세요!”

부동산 광풍이 우리집도 그냥 지나가지는 않았다. 지난해 결혼한 뒤로 두세번 정도 말다툼을 했는데 대부분 부동산 문제를 둘러싼 언쟁이었다. 나중에 보니 폭등한 집값에 가정불화에 우울증 환자까지 생긴 집이 한둘이 아니라는 기사가 나올 정도였다.

사실 집값에 관해 지난해 난 크게 틀리고 말았다. 아내는 “문재인 정부가 집값을 잡을 의지가 있나. 집값이 더 오를 것 같다. 빚을 내서라도 사야 한다”며 불안해했다. “부동산 정책은 박근혜 정부보다 못하다”면서. 난 “촛불의 힘으로 당선된 문 정부가 부동산 안정의 의지가 없을 수 있겠나, 8·2 대책으로 다주택자들에게 집을 팔라 경고했으니 집값이 막 오르긴 어려울 거다”라고 반박했다. 그 뒤에 아내가 사자고 했던, 우리가 전세 사는 서울 용산구의 소형 아파트만 해도 일년 만에 집값이 4억이나 올랐다.

아내는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해도 부족할 상황에서 남편이 부동산에 별 관심이 없고 오히려 백안시한다는 데 화가 났을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가족이 살 집을 어떻게 마련할지 같이 고민하자는 건데. 그래도 난 부동산이란 게 쉬운 건가 싶었다. 거시와 미시 경제가 결합돼 경제 전체의 흐름과 전망부터 개별 집의 특성까지 읽어야 하는 일이다. 내 머릿속엔 그냥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목돈이 생기면, 이자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빚을 더해서,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사면 되지 않나 딱 그 정도 계획만 탑재돼 있었다. 이제 직장생활 8년차, 결혼하느라 모아둔 돈 다 쓴 35살 직장인이 지금 부동산 공부 해봐야 언제 써먹겠냐 말이다.

여기엔 어떤 고집도 있었다. 남 일 고민하기도 바쁜 기자까지 부동산, 재테크에 눈이 벌게져 있으면 그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겠는가 하는. 대학생 때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을 배운 터라, 집을 이리저리 굴려 시세차익으로 집을 불리고 다주택자가 되어보겠다는 꿈이 누군가에겐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생각도 강하게 박혀 있다. 그래도 이번에 부동산 광풍에 집이 흔들흔들하고 보니,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정도는 읽을 수 있는 기본 실물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은 든다.

이달 초에 만난 한 아이티(IT)업계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문 정부 사람들은 돈 모아서 집 사는 일을 해보지 않은 것 같다.” 확인해볼 수 없는 사실관계라 동의도 반박도 안 하고 그냥 지나갔는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설사 문 정부에 나 같은 ‘선비’들만 모여 있어서, 실수요자든 투기꾼이든 그들의 심리를 잘 몰라 그동안 대책이 섬세하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필요한 건 이해심이 아니라, 이 불의한 부동산 불로소득 구조를 깨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가 아닐까.

양도세를 100% 가까이 올려서 불로소득을 환수하는 정책이나 전월세 상한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제안한 국토보유세 등 어느 것 하나 부동산 기득권 세력의 강한 반발을 피해갈 수 없다. 그래도 이 사회 전체가 힘을 합쳐 만들어낸 부가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에게 속절없이 빨려들어가도록 만들어진 구조를 이제는 정말 바꿔야 한다. 그래서 아내에게 의기양양하게 ‘그것 봐요, 제 말이 맞죠?’라고 말할 수 있게 될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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