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헌법은 부칙에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었다. 이에 근거해 국회는 1948년 9월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켰다. 특별조사위(반민특위)를 설치하고 대법원에는 특별재판부를 두는 것으로 했다. 국회에서 부장 1명과 부장재판관 3명, 재판관 12명 등 16명을 선출하되 그중 5명은 의원, 5명은 일반 사회인사 중에서 뽑았다.
이승만 정부는 국무회의에서 ‘특별재판부에 국회의원을 포함한 것은 삼권분립 정신에 위배되는 사법권 침해이고 법관의 자격을 법률로 정한다는 헌법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의서를 작성한 뒤 거부권 행사를 검토했다. 그러나 정부가 국회에 낸 양곡매입법안이 거부당할 것을 우려해 결국 이승만 대통령이 반민법에 서명하고 공포했다. 하지만 경찰을 사주해 반민특위를 습격하고 국회 프락치 사건을 일으켜 소장파 의원들을 잡아들였다. 국회가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를 꾸리긴 했으나 결국 반민특위가 폐지되면서 재판도 임시특별재판부에서 서둘러 마무리됐다.
4·19 뒤 제2공화국에서도 부정선거와 부정축재자 처벌을 위한 개헌이 이뤄져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 설치 조항이 마련됐다. 특별법은 특별재판소장과 특별검찰부장은 국회에서 선출하되, 소장이 위촉하는 5개 심판부의 각 5명 심판관들엔 법관과 변호사 외에 교수·언론인 등도 포함시켰다. 이 역시 5·16 쿠데타로 흐지부지됐다.
50여년 만에 다시 국회가 사법농단 사건 특별재판부를 논의 중이다. 그러나 법원행정처는 ‘특별재판부 구성에 다른 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재판받을 권리를 규정한 헌법에 위배된다’는 취지로 반대했다. 이승만 정부 때 이의서 내용과 비슷하다. 그러나 법무부 견해처럼 외부인이 추천에만 개입하고 재판은 현직 법관들이 한다면 재판 독립의 ‘본질’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법원 쪽은 대신 서울중앙지법 민사부 판사들로 3개 형사부를 신설했다. 기소될 전·현직 법관들 사건을 여기에 주로 배당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짝퉁’ 특별재판부로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김이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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