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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동물국회’와 ‘이종교배 정당’의 앞날

등록 2019-05-01 19:17수정 2019-05-02 09:37

김종구
편집인

암호랑이와 수사자 사이에서 태어나는 라이거는 가장 대표적인 이종교배 동물이다. 이종교배로 태어난 동물은 동종교배보다 적응력과 생존력이 더 강한 개체의 특성을 보인다. 라이거는 고양이과에서 가장 큰 동물이다. 사자·호랑이보다 덩치가 훨씬 크다.

바른미래당은 살아온 환경과 유전자가 전혀 다른 두 정치 세력의 만남이다. 애초부터 ‘종’이 다른 사람들의 결합이었다. 그래서 바른미래당 출범 당시 많은 언론은 “정치적 이종교배 실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바른미래당을 만든 사람들은 아마 호랑이의 아름다운 줄무늬와 사자의 기품있는 갈기를 지닌 정당을 꿈꿨을 것이다. 사자와 호랑이를 합한 용맹과 완력을 갖추길 희망했을 것이다. 그 꿈이 헛된 것임을 확인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3 보궐선거에서 바른미래당은 처참하게 패했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바른미래당은 더욱 기묘한 모습을 보였다. 패스트트랙을 둘러싼 아수라장 국회를 ‘동물국회’로 비유하는데, 바른미래당은 어떤 동물의 모습이었을까. 안타깝게도 한 몸통에 머리가 두개인 기형적 동물로 보였다. 유전자 염색체 수가 다른 두 개체는 쉽사리 새로운 개체를 온전하게 탄생시킬 수 없음을 다시금 확인시켰다.

바른미래당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키워드는 제3당, 합리적 중도, 개혁적 보수 이런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키워드들은 비슷한 한 묶음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작동하고 있다. 제3당과 개혁적 보수란 명제는 이제는 상호보완적이 아니라 적대적 관계로 날카롭게 대립한다.

겉모습만 봐서는 바른미래당 안의 패스트트랙 찬성파는 더불어민주당의 2중대, 패스트트랙 저지파는 자유한국당의 2중대라고 비난해도 무방해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 내용은 크게 차이가 난다. 패스트트랙 찬성론에는 제3당을 향한 대의명분이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새로운 선거제가 시행되면 바른미래당의 공간은 훨씬 넓어진다. 지금의 바른미래당이 과연 제3지대 유권자들의 마음을 받아낼 그릇이 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제3의 대안 정당은 바른미래당의 애초 출발점이었고 결코 버려서는 안 될 꿈이다.

그런데 패스트트랙 저지파는 그런 대의명분조차 없다. 패스트트랙을 결사반대하는 세력들은 주로 개혁적 보수를 주창해온 사람들이다. 이들을 지금 짓누르고 있는 것은 개혁보수의 암담한 미래에 대한 절망감과 열패감이다. 애초 이들은 합리적 보수세력인 자신들이 기존의 극우 보수세력을 교체하거나 최소한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울트라 보수’의 기사회생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이들은 바른미래당이 아니라 ‘암담미래당’ 당원들이 되고 말았다. 이런 절망감 속에서 ‘기득권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 관계를 허무는 정당이 되겠다’는 다짐은 어느새 증발해버렸다. 제3당에 대한 소명감도 사라지고, 보수의 대체도 무망하다고 여길 때 엄습하는 것은 생존 위협의 공포다. 이들의 적나라한 생존 욕구는 ‘당내 민주주의 수호’라는 고귀한 정치 슬로건으로 바뀌고 ‘헌법파괴 저지’의 깃발로 펄럭였다. 의원들 각자의 온도 차이는 있지만, 패스트트랙 저지의 몸짓에서는 거대 보수정당에 대한 연대의 손짓, 충성의 서약, 생존을 위한 안간힘이 전해져온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바른미래당은 온몸에 상처를 입었지만 나름의 성과도 거두었다. 존재감의 각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운영하는 ‘빅카인즈’에 수집된 바른미래당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최근 들어 숫자가 두배 가까이 늘었다. 잊힌 정당만큼 불행한 정당도 없음을 고려하면, 경위야 어쨌든 당내 분란과 불협화음의 손실을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어찌 보면 패스트트랙 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바른미래당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패스트트랙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바른미래당의 협조에 기반한 4당 공조의 지속은 필수적이다. 정치의 낡은 틀, 권력기관의 낡은 구조 혁파의 중요한 열쇠를 바른미래당이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될까. 바른미래당 당내 사정을 둘러보면 아무래도 비관적이다.

이종교배 동물들은 거의 후손을 생산하지 못한다. 이종교배의 산물인 바른미래당도 결국은 ‘불임정당’으로 끝날 것인가. 바른미래당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선거법 개혁을 통해 ‘가임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 그런 절호의 기회를 걷어차는 것은 바른미래당뿐 아니라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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