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근
논설위원
‘동물국회’, 꼭 나쁜 건 아니다. 자유한국당이 정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격하게 반론을 펼 이들이 많을 것이다. 좀 다르게 생각해보자. ‘패스트트랙’이 남긴 상처는 깊고 커 보인다. 기물 파손, 법안 탈취, 욕설이 난무했다. 언뜻 2012년 5월 국회선진화법 도입 이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꼭 퇴행일까. 자신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새로운 정치 규범을 만드는 용광로에 불을 지핀 것일 수도 있다.
군사독재 정당의 후예들이 “독재 타도, 헌법 수호”를 외치며 연와농성을 벌이는 게 참 낯설다. 구호와 행동은 얼마든지 모순되고, 정당한 표결마저 폭력으로 막아선 이들이 의회 민주주의의 장애물이라는 걸 국민은 재빨리 알아챈다. ‘게임 규칙’인 선거법을 단독 처리한 적 없다고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목 놓아 외쳤다. 이에 1988년 3월8일 새벽 2시, 당시 민정당 의원인 그의 아버지 장성만 국회부의장이 야당의 반대를 뚫고 선거법 날치기를 주도하는 장면을 소환한다. 황교안 대표는 ‘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십시오’라는 글을 통해 “좌파세력들은 의회 쿠데타에 성공했다”며 “독재 촛불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횃불을 들자”고 외쳤다. 독실한 신자와 성실한 공안검사가 만나 훌륭한 ‘기도문’을 완성했다. 그런데 현실에선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국회법을 무력화한 자유한국당을 해산하라는 국민청원이 불붙었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치적으로 자랑해온 황 대표를 조롱하듯 청원은 160만명을 돌파했다. 극단의 대치는 풍자와 반전으로 전복된다.
가장 큰 기여는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인 ‘국회의원 고소·고발 사건’으로 비화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국회사무처까지 국회법을 어겼다며 자유한국당 의원 5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자유한국당이 맞고발한 민주당 의원까지 더하면 국회의원 68명이 검찰수사를 받게 됐다. 국회를 검찰에 맡겼다느니 정치 실종이니 뒷말이 무성하다. 하지만 정치 문화를 확 바꾸는 ‘자기희생’의 상징이 될 수도 있다. 옛일을 돌아보자. 2011년 11월 김선동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처리에 반발해 본회의장에 최루탄을 투척했다. 이듬해 5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주도로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됐다. 그러나 ‘처벌 규정’이 논란이었다. 야당은 반발했지만 새누리당은 2013년 8월13일 국회법 ‘제15장 국회 회의 방해 금지’ 규정을 신설했다. 회의방해죄 ‘5년 이하 징역, 1천만원 이하 벌금’,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기록 등을 손상한 경우 ‘7년 이하 징역, 2천만원 이하 벌금’을 명시했다. 500만원 이상 벌금형 확정 때 의원직 상실,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으면 10년 동안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걸 고려하면 의원의 생사여탈을 가를 무시무시한 국회법이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적용 판례는 없다. 그 법의 무게를 알았기 때문이다. 2016년 2월23일, 민주당·정의당 의원들은 국가정보원의 숙원인 테러방지법이 본회의에 상정되자 분노했다. 하지만 장장 192시간27분, 무려 9일 동안 무제한 토론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필리버스터로 맞섰을 뿐이다. 자유한국당은 용감하게 그 선을 넘었다. 황교안 대표는 “저는 고소·고발장 들어오면 수사하고 처리했던 법조인 출신”이라며 “끝까지 고소·고발당한 분을 지켜내겠다”고 공언했다. 국회법 조문을 고려할 때 상당수가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법안을 탈취·훼손한 이은재 의원은 딱 걸렸다. 회의장 봉쇄를 주도한 나경원 원내대표도 위험하다.
쓰디쓴 감기약을 삼켜본 젖먹이는 약숟가락만 보면 입을 앙다문다. 금배지 몇개만 박탈돼도, 스스로 만든 법을 어기며 ‘동물국회’로 돌진하는 무모한 의원들은 사라질 것이다. 정당한 표결을 막으려면 정치생명을 온전히 걸어야 한다는 걸 집단 체험하면 몸 대신 입으로, 논리로 싸울 것이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 홍영표 원내대표는 “소 취하는 절대 없다”는 말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정치 복원을 명분 삼아 ‘흥정’을 벌인다면 몸싸움은 관행이 될 것이다. 새누리당이 주도한 선진화법을 자유한국당이 판례로 정착시켜 튼튼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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