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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께 / 김경희

등록 2019-08-26 18:39수정 2019-08-27 10:20

김경희 미국 윌리엄메리대학 교수
김경희 미국 윌리엄메리대학 교수
김경희
미국 윌리엄메리대학교 교수·<미래의 교육> 저자

저는 미국에서 영재교육으로 유명한 윌리엄메리대학에서 3년 만에 종신교수가 될 정도로 창의력 및 영재 분야에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미국의 ‘창의력 위기’라는 연구논문이 2010년 <뉴스위크> 표지에 실려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이래로, 창의력 개발을 위해 수많은 나라에서 저를 초청하고 자문을 구합니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창의력 교육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난 5월 말 우리나라 창의력 교육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모국을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은 창의력 교육은커녕, 아이들이 다 다른 개성, 적성, 소질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사실조차 부정하고, 학벌 따기만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잠재력을 발견할 기회를 제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계를 경쟁 무대로 큰 꿈을 펼치는 대신, 클릭만 몇번 하면 접할 수 있는 죽은 지식을 외우고 문제집을 풀고 있습니다. 마치 헤엄을 잘 치는 물고기에게 바위 타기를 강요해서 기 죽이는 것처럼, 다른 소질이 있는 아이들에게 다 똑 같은 것을 강요해서 패배자라고 낙인을 찍고 있습니다.

더 넓은 바깥세상으로 나아가는 대신, 모두 학벌을 따기 위해 우물 안에서 똑같은 것을 할 때는 피 튀기는 경쟁이 불가피합니다. 입시경쟁이 치열할수록, 많이 배운 부모가 사교육비에 남보다 많이 쏟을 때 아이가 고득점을 하게 됩니다. 원래 창의력 교육을 하기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마저도 잘사는 집 아이들만 다니는 귀족 입시학원이 됐습니다. 더욱이 고등학교만 입시 경쟁터였던 것을 이런 귀족학교 입학을 목표로 중학교, 초등학교, 유치원까지 입시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한국 아이들의 경쟁심리가 위험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런 전쟁터에서 학벌을 딴 아이들은 우월감이나 편협된 세계관을 가진, 결국 부정부패하는 이기적인 권력자들이 됩니다.

더 치열해진 입시경쟁으로, 사교육비 부담이 늘면서 한국은 저출산 현상이 심화됐고, 계층 간 불평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을 통해 교육기회균등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미국 명문대 지원자의 대학입학자격시험(SAT) 점수에 남미계는 130점, 흑인계는 310점을 각각 가산해주는 반면, 백인계는 가산점이 없고 동양계는 140점을 감산합니다. 동양인들이 사교육비에 많이 투자해서 고득점하는 아이들이 많은 데 비해, 다른 인종들, 특히 남미나 흑인계들은 투자를 하지 않아 저득점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계층 간 불평등이 심해지면 저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늘고 범죄 및 사회적 불안도 늘기 때문입니다.

한국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부칙을 만들어 자사고·특목고가 신입생의 20% 이상을 기초생활 수급자나 다문화가족 자녀 등으로 뽑도록 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한 자사고가 3%만을 뽑았기 때문에 해당 교육청이 자사고 폐지를 결정했을 때, 교육부 장관님은 그 전에 만들어진 자사고는 예외라며 그 결정을 번복했습니다. 이는 창의력 교육에 필수적인 교육지방자치제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교육기회균등 정책과 상반됩니다. 대학시절 교사의 꿈을 가지셨던 교육부 장관님! 나라가 망하더라도 소신을 버리고, 소수 아이들만 뽑아서 귀족학교에서 떠 받들고 나머지 아이들은 무시해 버리는 교육을 계속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못 배우고 못 사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빈곤을 대대로 물려받는 대신에, 큰 꿈을 꾸며 저마다의 개성, 적성, 소질에 따라 창의력을 개발하고 인생역전을 하게 해서 더불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까?

배움이 즐거워서 스스로 탐구하고 독서해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가 되는 대신, 한국 아이들은 싫어도 억지로 잘 외워 서양 아이들보다 시험점수만 높습니다. 단기적 암기로 딴 고득점은 시험이 끝나면 두뇌에서 사라져버리는 휘발성 지식일 뿐 실력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한국은 남의 나라에서 만든 지식과 기술을 암기하고 베끼며 열심히 일해서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예측이 불가능할 정도로 변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열심히 베껴봤자 다 베끼기도 전에 남이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냅니다. 창의력으로 새로운 회사나 직종들이 생겨나면서, 코닥과 노키아와 같은 거대 기업들이 급격한 변화에 대처할 새로운 아이디어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다가 망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아이마다 ‘다른’ 전문성(좋아하는 것 잘하기)을 쌓고 상상력(엉뚱한 생각으로 전문성 넘어서기) 및 비판력(정확한 분석과 평가로 선택하기)을 길러, 상상력이 높은 아이와 비판력이 높은 아이, 못사는 집 아이와 잘사는 집 아이처럼 성장 배경, 사고방식이 ‘다른’ 아이들이 서로 전문성 교류를 해서 한국이 시대적 변화에 앞장서도록 해야 됩니다.

창의력 교육을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이 필요할까요? 첫째, 학벌주의 타파를 위해 공공기관에 특정 대학 출신의 채용 비율을 제한하도록 법제화해야 합니다. 둘째, 대학 편의적 학생 선발 대신, 단과대 특성과 관련된 학생의 전문성 및 사회 기여 가능성을 고려한 학생 위주의 선발을 해야 합니다. 한 분야에서의 지식·기술·실적 등을 고려한 학생의 전문성의 정도, 상상력, 전문성 교류력, 비판력, 설득력 등의 창의력을 판단할 수 있는 교수들이 심도있게 평가해야 됩니다. 셋째, 일상생활에서의 창의적 풍토 조성 및 자녀 교육에 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 학부모 창의력 교육을 의무화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학부모 근무조정, 유급 휴가제, 참여수당 제공, 또는 직장별 교육이수 비율에 따른 정부 장려책 등을 법제화해야 합니다. 넷째,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교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창의력 신장을 위해 교사가 수업, 생활지도, 평가(흥미유발 교수법, 논술형 평가, 학교생활기록부 및 수행평가 내실화)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교육행정체계를 개선해야 합니다. 또한 국정 교과서나 교사용 지도서를 배부하는 대신, 교사의 교과내용 재구성과 단위학교 교육과정운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교육자치의 내실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위의 과정들은 교사의 사명감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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