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재 ㅣ 초파리 유전학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정보를 얻기 위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사이트는 질병관리본부가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실시간 상황판(wuhanvirus.kr)이다. 개발자 부부인 권영재, 주은진씨는 3일 동안 사이트를 개발해 1월29일 공개했고, 현재 하루 7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 신종 코로나 관련 상황을 업데이트한다. 1월30일엔 경희대학교 재학생이 만든 코로나맵(coronamap.site) 서비스도 공개됐다. 고려대학교 재학생 4명은 신종 코로나 환자가 다녀간 장소를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코로나 알리미’(corona-nearby.com) 사이트를 제작해 2월1일 공개했다. 이 사이트에선 몇번째 확진자가 언제 방문했는지에 대한 정보와 목적지 주변 확진자의 방문 장소 및 질병관리본부 진료소 위치까지 알려준다. 1월31일 금요일 저녁 8시에 모여 개발을 시작했고, 토요일 저녁 8시쯤 사이트를 공개했다고 한다. 개발에 든 비용은 1만4천원, 이 사이트는 현재 실시간 1천~5천명이 이용 중이다.
코로나 알리미와 코로나맵을 만든 학생들 뒤에는 ‘멋쟁이사자처럼’이라는 민간 프로그래밍 교육단체가 있다. 이 단체를 만든 이두희씨는 천재 해커로 불리는 괴짜다. 그는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 교내 전산망의 보안이 취약하다고 학교에 경고했으나 학교가 듣지 않자, 직접 교내 시스템을 해킹해서 학생 3만명의 정보를 공개했다. 그랬던 그가 2013년 컴퓨터공학 비전공자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래밍 교육단체를 설립했고, 그 단체가 바로 멋쟁이사자처럼이다. 멋쟁이사자처럼의 표어는 “내가 직접 프로그래밍하겠다”로, 창업자가 반드시 코딩 전문가일 필요는 없으며,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만 코딩을 배워도 충분하다는 이두희씨의 신념이 녹아 있다. 그렇게 7년, 4천명이 넘는 교육생이 배출되었고, 이두희씨는 위 사이트들의 서버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바이러스 감염 확진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고 이를 국민에게 신속하게 알릴 책임은 정부에 있는데, 이들은 모두 정부와 관련 없는 민간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장악한 정부의 모든 프로세스는 느리고 책임 회피가 목표인 경우가 많다. 메르스 사태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청와대가 컨트롤타워가 아니라며 발뺌을 하다 사태를 악화시켰다. 세월호 사고에서 그 느려터진 대응은 참사를 불렀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빠르고 신속하게 시민과 함께 발맞춰 해나가는 쪽은 언제나 민간이다. 게다가 그들의 선의를 받아 지원해야 할 정부는 언제나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이번에도 코로나맵의 서버 비용은 정부가 아니라 이두희씨와 네이버가 지원한다.
프로그램 개발자라는 직업은 한때 한국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한국은 2000년대 초반 아이티(IT) 강국으로 불렸지만 지나친 규제, 관료주의, 개발자에 대한 형편없는 처우 등으로 인해 어느새 개발자의 지옥이 됐다. 우수한 인재들은 외국으로 빠져나가거나 개발자라는 직업을 포기했다. 문재인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외치던 시절 한국엔 그 많던 개발자가 사라지고 없었다. 20년 전, 한국 사회가 개발자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줬더라면 이런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부엔 개발자 경험을 가진 공무원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프로그램 관련 일은 외주로 처리하고 있을 것이다. 말로는 4차 산업혁명을 떠들면서, 개발자 출신을 공직 곳곳에 포진시키는 방법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게 공무원 사회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는 ‘거브테크’라는 공공기관을 만들어 정부의 기술 혁신을 견인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내부 기술력을 키워 디지털 시대의 정부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이다. 거브테크에는 현재 1800여명의 엔지니어와 프로그래머 등이 포진해 있으며 이들은 모두 ‘공식’ 공무원이다. 거브테크를 이끄는 수장들은 모두 개발자 출신이다. 한국 정부에 개발자 출신 고위공직자가 한명이라도 있던가. 4차 산업혁명의 시작은 정부에 개발자를 포진시키는 것이다.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