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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한달은 얼마나 긴 세월인가? / 정인환

등록 2020-02-13 18:11수정 2020-02-14 16:02

정인환 ㅣ 베이징 특파원

며칠째 뿌연 먼지가 도시에 잿빛을 더하고 있다. 춘절(설) 연휴가 끝난 지 한참인데, 중국 수도 베이징의 거리는 여전히 텅 비었다. 아파트 단지 출입구는 1곳을 빼고 모두 폐쇄됐다. 출입자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아파트 단지 사이로 난 도로는 아예 철조망으로 막아버렸다.

유일하게 개방된 출입구 앞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약 2주 전부터 배달원의 아파트 단지 출입이 금지되면서 생긴 새로운 풍경이다. 택배회사별로 따로 자리를 잡고 물건을 늘어놓으면, 연락을 받은 주민이 나와서 찾아간다. 비접촉식 온도계를 든 경비원은 들고 나는 주민들의 체온을 일일이 재고 있다. 날이 추우면 온도계도 얼어붙는다. ‘24도, 27.5도, 29도, 32도….’ 주민들의 체온이 좀처럼 36.5도에 다가서지 못했다.

후베이성 우한에 사는 루판이란 사람의 할머니(78)는 만성 신부전 환자다. 벌써 3년째 우한의대 부속 중난병원에서 1주일에 3차례씩 혈액투석을 한다. 지난 1월 초 할머니가 발열 증세를 보였다. 병원에선 양쪽 폐에 감염 증세가 있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을 때였다. 1주일 남짓 입원 치료로 상태가 나아졌다. 병원 쪽은 퇴원을 해도 되겠다고 했다.

1월25일 할머니가 다시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간 1주일에 3차례씩 빠짐없이 병원을 찾아 투석을 했다. 투석을 받는 환자는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던 무렵이다. 불안한 마음에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 ‘고의심군’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바이러스 진단 키트가 없어 확진 판정을 하지 못했다. 병원 쪽은 자가격리를 권했다.

할머니 상태는 매일 나빠졌다. 2월1일엔 병원 쪽이 정례 투석을 거부했다. 투석실에 격리 병상이 없어 전염 우려가 있다고 했다. 투석을 하지 못한 할머니는 상태가 더욱 나빠졌다. 수소문 끝에 다른 병원을 찾아가, 코로나19 진단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가족들은 기뻐했다.

투석을 해온 병원으로 검사 결과지를 들고 갔다. 입원과 투석 재개를 요청했다. 병원 쪽은 다시 폐 단층촬영을 한 뒤, “코로나19로 보인다. 바이러스 진단 검사에 오류가 많다”며 거부했다. 루판은 병원 쪽을 탓하지 않는다. 진단 검사에 오류가 많다는 얘기는 루판도 익히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잘못된 검사로 치료 시기를 놓쳤을까? 얼마나 많은 의료진이 잘못된 진단 탓에 무방비로 코로나19에 노출됐을까?’ 루판은 생각했다.

할머니가 의식을 잃었다. 확진 판정을 받지 못해 전담병원엔 갈 수 없다. 일반병원에선 코로나19를 의심해 받아주지 않았다. ‘120 응급구조대’에도 연락을 했지만, “미리 갈 병원이 정해져야 구급차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죽음의 사슬’이었다.

2월5일 저녁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입원할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다리지 못했다. 그는 이날 오후 세상을 등진 뒤였다. 중국 월간 <런우>(인물)는 13일 인터넷판에서 루판의 사연을 소개하며, “봉쇄된 우한에는 정기적으로 투석을 받아야 할 신부전 환자가 1만여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한달 전인 1월13일 코로나19 상황에 대해 우한시는 이렇게 발표했다. “신규 확진자·사망자 없음. 누적 확진자는 41명, 사망자는 1명임.” 2월13일 현재 우한의 누적 확진자는 3만2994명, 사망자는 1036명에 이른다. 한달은 얼마나 긴 세월인가?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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