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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이택 칼럼] 조선일보 100년, 그들이 감춘 ‘진실’

등록 2020-03-09 16:55수정 2020-03-10 02:38

조선일보는 100주년을 맞아 오보를 바로잡고 사과한다며 숱한 용공 조작과 왜곡·편파 보도는 감춰놓고 극히 일부의 ‘실수’ ‘오류’만 나열했다.

과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이런 태도가 지금까지 이어져 역사의 진실을 가리고 공론장을 어지럽히고 있다.

친일과 독재예찬의 전통은 요즘도 대놓고 그 후계세력을 편드는 과도한 정파적 보도로 재현되고 있다.

‘조선동아 거짓과배신의 100년청산 시민행동’이 5일 오전 서울 조선일보사 옆 원표공원에서 연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오종선 조각가가 <조선일보>의 반민족 역사를 두루마리 휴지로 형상화한 설치미술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조선동아 거짓과배신의 100년청산 시민행동’이 5일 오전 서울 조선일보사 옆 원표공원에서 연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오종선 조각가가 <조선일보>의 반민족 역사를 두루마리 휴지로 형상화한 설치미술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기업이든 단체든 100년을 지속했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지난 5일 100주년을 맞은 <조선일보>는 지난해부터 많은 연재기사를 쏟아냈다. ‘불의한 시대와 투쟁’하며 ‘민족과 나라의 발전’을 이끌었고 ‘팩트로 괴담에 맞서’는 100년, 한마디로 ‘진실의 수호자’였다고 자평했다. 주필은 앞으로도 ‘사실’만 붙들고 독자 곁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특별기고에 나선 원로 언론학자는 ‘3·1운동 정신으로 탄생’해 ‘항일운동으로 민족운동본부 역할’을 했고 ‘광복 후엔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산업화에 앞장’섰다고 100년을 정리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나 난개발 현장 고발 시리즈 등 필자가 기억하기에도 언론계 안팎의 주목을 받은 기사들이 적잖다. 조선일보와 대립했던 전직 대통령이 한때 사석에서 부인이 조선일보 문화면을 너무 열심히 읽는다고 넋두리할 정도로 이른바 ‘간지’면은 맛깔난 기사와 편집으로 정평이 나기도 했다. 10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만 420만여건이었다고 하니 의미있고 좋은 기사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진면목을 이것만으로 판단하는 건 섣부르다. 지난 100년을 스스로 정리한 기사 자체에 동의하기 어려운 ‘사실’들이 많다. <조선일보 대해부>를 비롯해 조선·동아 해직기자나 언론·시민단체들이 기록해놓은 ‘사실’과도 한참이나 거리가 있다. 조선일보의 표현처럼 ‘암흑기의 오점’ ‘상흔’이나 ‘얼룩진 기록’이 있었다며 한두 마디로 대충 넘어가기엔 얼룩이 너무 크고 짙다. 100년에 한번 맞는 귀한 지면에서 ‘사실’만 붙들겠다고 다짐했으면 오점과 얼룩도 한번쯤은 깔끔하게 인정하고, 독자와 국민들에게 사과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과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그런 태도가 결국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 역사의 진실을 가리고 공론장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 같아 아쉽고 또 찜찜하다.

나라 잃은 시기 이상재·조만식 등 독립운동가들이 조선일보 사장을 맡아 한글교육과 문자보급운동, 신간회 운동을 주도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1937년 이후 제호 위에 일장기 올리고 일왕 부부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실으며 사설로 충성을 맹세한 매년 1월1일치 1면 또한 조선일보의 숨길 수 없는 역사다.

박정희 시대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사설을 실었다고 자랑했지만 5·16 군사쿠데타 3일 만에 ‘찬사와 지지’를 표명하고 민주주의 압살하는 유신체제를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처’라며 환영한 것도 그들이었다.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문명자씨는 회고록에서 정권과의 기사 뒷거래 의혹까지 제기했다. 자신이 송고한 ‘박정희 좌익전력’ 기사가 몰고됐는데 알고 보니 방우영 사주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에게 건넸다는 것이다. ‘진실의 수호자’를 자처하려면 잘 알려지지 않은 부끄러운 역사도 정직하게 드러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최석채·선우휘 등 논객들을 상찬하면서 자사 출신 실천지성 리영희 선생이나 언론자유를 지키려다 해고된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의 32명 양심적 언론인들은 언급조차 않았으니 옹졸하고 비겁하다.

총칼로 시민을 학살하고 집권한 신군부 시절, 조선일보 사주는 군사반란을 옹호하는 어용기구,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여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하고, 언론 자유를 탄압하는 데 적극 가담했다. 그 대가로, 언론 통폐합으로 방송사·신문사를 빼앗긴 경쟁사들의 발을 묶어놓은 채 비약적으로 사세를 키워 매출액 3위에서 1위로 올라섰다. 광주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을 ‘자상’하고 ‘책임감’ 넘치는 ‘청렴한 지도자’로 찬양한 지면은 ‘진실’을 팔아 ‘영달’을 추구한 상징적인 기록이다.

100주년을 맞아 오보를 바로잡고 사과한다며 숱한 용공 조작과 왜곡·편파 보도는 감춰놓고 극히 일부의 ‘실수’ ‘오류’만 나열한 것이야말로 ‘조선’스럽다. 그러면서 ‘산업화로 중산층이 두껍게 형성된 뒤에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게 신념이라며 궁색한 변명 한마디를 슬쩍 끼워넣었다. 친일과 독재예찬의 전통은 요즘 대놓고 그 후계세력을 편드는 과도한 정파적 보도로 재현되고 있다. 클릭 한번에 모든 기사가 호출되는 시대, 조선일보 100년의 추한 ‘진실’ 역시 민주언론시민연합 아카이브에만 들어가도 다 드러난다. 한 사람을 영원히, 모두를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모두를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격언을 100주년 선물로 전한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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