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증시가 연일 폭락한 가운데 17일 원-달러 환율이 10년 만에 가장 높은 1,240원대에 마감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딜링룸의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처음인 게 너무 많다. 지난 11일 집안 제사를 미뤘다. 팔순 아버지가 결단했다. “코로나가 극성인데, 아무래도 안 해야겠지?” “현명한 판단”이라 거들었다.
외국 대학에 합격해 입학금, 등록금, 기숙사비까지 납부한 딸은 요즘 불확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리엔테이션과 입학식은 취소됐고, 개강도 4월 하순으로 미뤄졌다. 대학 당국은 개강 또한 불확실하다며 아예 9월 학기로 입학을 미루거나 입학과 동시에 휴학을 선택할 것을 권고하는 안내문을 최근 보내왔다. 딸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 결단은 못 한 채 고심만 깊어진다.
중학생 아들과는 일상이 신경전이다. 개학이 미뤄지자 새 담임 선생님이 온라인 과제를 올리지만 “어차피 또 개학이 늦춰질 것”이라며 버틴다. 학원도 문을 닫아 살판났다. 코인노래방, 게임방 등은 코로나19 감염 위험이 있으니 제발 가지 말라고 용돈을 무기 삼아 압박하지만 “나이가 깡패”라는 중학교 2학년은 절대 고분고분하지 않다.
이런 일상의 변화는 견딜 만하다. 당장 생계가 달린 이들과 견주면 작은 불편일 뿐이다. 대학 선배는 <교육방송> ‘세계테마기행’에도 출연한 유럽여행 전문 기획자다. 그런 그가 페이스북에 새벽 배송 쿠팡맨이 됐다는 소식을 알렸다. 최근 한 쿠팡맨 가장의 죽음을 전하며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현실임을 느낀다”고 했다. “체험 삶의 현장을 찍는 연예인도 아니고 민생체험 쇼를 하는 정치인도 아닌 진짜 생존의 위기에 몰린 가장의 한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적었다. 코로나19로 일이 끊기니 가족의 생계를 위해 수요가 폭증한 새벽 배송 배달원이 된 것이다.
감염병의 위험을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팬데믹>엔 코로나19 상황을 예언한 듯한 수많은 사례와 명언이 담겨 있다. “공공의료 확대가 답이다.” “유행병은 흔적을 남긴다. 특수 병원체가 지키는 경계선은 없다.” 한마디 한마디 가슴에 박힌다.
코로나19, 이 감염병은 우리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까. 경계선을 알 수 없다. 내 이웃을 잠재적 바이러스 보균자로 인식하며 거리두기를 넘어 배제하고, 수천만원을 뜯길 위험을 감수하며 마스크를 사재기해 이익을 남기려 하고,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 59명을 숙소에서 나가라고 민원을 넣는 이들이 존재하고, 더 심각한 환자를 위해 비워달라는 병상에서 버티며 나만 살겠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파장은 그 깊이를 예단조차 하기 어렵다. 지난 13일 김포공항에선 개항 40년 만에 국제선 비행기가 단 한 편도 이륙하지 않았다. 인천공항 계류장엔 갈 곳 잃은 비행기가 즐비하다. 세계 각국이 서로 문을 걸어 잠그면서 국제분업 체계는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1% 이하 경제성장률 전망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양상이 더 심각한 미증유의 비상경제시국”이라 선언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아이엠에프 사태 때보다 더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기업과 가정에 큰 생채기를 남기고 수많은 이들의 일자리를 앗아간 기업도산과 실직, 구조조정이 다시 현실화된다면 그 고통은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까, 두렵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정치와 언론이다. 그런데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은 경제위기를 들먹이며 정부 정책엔 일단 총선용 포퓰리즘이라 낙인을 찍는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구하며 혐오와 배제를 부추기더니, 이제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 금지·제한 국가 증가를 중계하며 ‘한국 고립’을 조롱한다. 신속한 진단키트, 드라이브스루 검사소 설치 등 국제적 본보기가 된 대응체계에 대한 평가에는 몹시 인색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인구의 60~70%가 감염될 것이다.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며 보건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도록 전파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밝히자, 독일 언론은 “환상을 만들지 않았다”며 호평했다고 한다. 독일 언론 지형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런 정치지도자가 있고, 냉정하게 평가해주는 언론이 있다는 게 부럽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끊임없는 자기비하와 정치공학적 판단에 대한 반성을 기대하는 건 절대 아니다. 다만 세계 172개국이 한국발 여행자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할 때 ‘특별입국절차’로 절제된 대응을 하며 코로나19 역유입을 막는 노력을 칭찬할 수는 없어도, 재를 뿌리며 훼방을 놓아선 안 된다.
신승근 ㅣ 논설위원
sk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