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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파원 칼럼] 아이들의 학교 / 조기원

등록 2020-03-26 18:22수정 2020-03-27 13:36

조기원

도쿄특파원

1948년 4월26일 일본 오사카부청 앞 오테마에 공원 앞에 조선인 3만명이 조선학교 폐쇄 명령을 철회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일본 경찰은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구타했다. 이어 앞줄에 있던 일본 경찰이 권총을 뽑아 발사했다. 당시 16살이었던 재일조선인 김태일이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다.

이 사건은 재일조선인들이 오사카부와 효고현에서 조선학교 폐쇄에 반대하며 벌인 교육 투쟁인 ‘한신 교육 투쟁’ 중 일어난 사건이었다. 당시 일본은 2차대전 패전 3년 뒤로, 아직 미 군정 치하인 상태였다. 미 군정은 일본 점령 초기에는 재일조선인들이 세운 조선학교에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으나, 이후 탄압으로 돌아섰다. 미 군정 방침 아래 일본 당국은 일본 각지에 있던 조선학교를 폐쇄하는 일을 실행했다.

지난해 1월부터 일본에서 상영을 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아이들의 학교>에는 해방 뒤 조선학교의 설립부터 한신 교육 투쟁, 그리고 최근의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 조처에 대한 저항까지 조선학교의 역사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 조선학교가 해방 뒤 70여년 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알 수 있다. 일본영화부흥회의는 지난 21일 <아이들의 학교>를 만든 고찬유 감독과 스태프들에게 장려상을 수여했다. 일본영화부흥회의는 1961년 독립프로덕션과 배급 사업자, 작가 등이 참가해 만든 영화인 단체다.

미 군정을 등에 업은 학교 폐쇄령은 이후 풀렸지만 이후에도 조선학교 차별은 계속됐다. 일본 사회에서 북한 혐오가 표면화된 2000년대 이후에 조선학교는 우익들의 손쉬운 공격 대상이 돼 괴롭힘을 받아왔다. 2009년 교토조선제1초급학교 앞에서 벌어졌던 ‘헤이트 스피치’가 대표적이다. 최근 거리에서 하는 헤이트 스피치들은 법적 규제 때문에 줄고 있지만,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조선학교에 대한 배제와 차별을 일본 정부가 제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민주당 정권 때인 2010년 고교 무상화 정책을 시작했으나 ‘북한 문제’를 이유로 조선학교는 대상에서 보류했다. 아베 신조 2차 정부 출범 뒤인 2013년에는 아예 행정규칙을 고쳐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조선학교 제외를 못박았다. 조선학교 졸업생 등이 조선학교 고교 무상화 배제 조처는 위법이라며 도쿄, 오사카, 나고야, 히로시마, 후쿠오카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냈으나 모두 패소했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소비세(부가가치세)율 인상 수입을 재원으로 유아교육 무상화 조처도 시작했는데 조선학교 유치원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조선학교 졸업생과 재학생들은 2013년부터 2주에 한번꼴로 금요일에 문부과학성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시위 때마다 학생들은 “얼마나 소리쳐야 충분할까. 빼앗겨온 목소리가 있다. 들리는가. 듣고 있는가…”(<소리여 모여라, 노래여 오너라>)를 부른다. 이 노래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일본에서도 마스크 품귀 현상이 벌어진 최근에는 사이타마시가 시정부에서 비축한 마스크를 관내 유치원 등에 배포하면서 조선학교 유치원을 배포 대상에서 제외했다가 철회한 일도 있었다. 박양자 사이타마 조선 초·중급학교 유치부(사이타마 조선유치원) 원장은 “만일 앞으로 다른 일이 있어도 우리는 제외될 것 아니냐. 아이들을 어떻게 지킬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학교>는 영화 후반부에서는 2018년 한신 교육 투쟁 70주년 집회 때 열린 김태일 소년의 추모제 모습을 보여준다. 70여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일본 사회에서 조선학교 배제와 차별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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