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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의 창] 육식과 역병 / 전범선

등록 2020-03-27 18:32수정 2020-03-28 17:30

전범선 ㅣ 가수·밴드 ‘양반들’ 리더

좀비 드라마 <킹덤>이 인기다. 극 중에서 역병이 창궐하는 이유는 식인이다. ‘생사초’라는 신비의 풀로 죽은 임금을 되살리자 괴물이 된다. 괴물에게 물려 죽은 인간의 몸을 굶주린 백성들이 끓여서 나눠 먹자 그들도 모두 괴물이 된다. 그때부터는 여느 좀비 영화처럼 괴물에게 물리면 괴물이 된다.

역병은 사실 벌레다. 생사초에 달려 있는 알에서 부화한 벌레들이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 세자 이창(주지훈 분)은 역병의 원인을 깨닫고 한탄한다. “고작 이 작은 벌레였구나. 사람들을 죽이고 경상 땅을 뒤엎고 이 나라의 왕실을 뒤흔든 게 고작 이 작은 벌레였어.”

벌레보다 훨씬 작은 바이러스가 세계를 뒤흔들고 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50만명, 사망자는 2만2천명이다. 역병의 매개체인 바이러스(또는 벌레)는 잘못이 없다. 그것들은 살기 위해 숙주를 찾을 뿐이다. <킹덤>의 역병은 인간이 인간을 먹어서 창궐했고, 코로나19는 인간이 박쥐 아니면 천산갑을 먹어서 창궐했다. 박쥐에 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변이되어 직접, 또는 천산갑을 거쳐 인간에게 전이된 것이다.

지난 30년간 발생한 역병의 75%는 동물에서 유래한 인수공통감염병이다. 2012년 메르스는 박쥐에서 낙타를 거쳐 인간에게, 2009년 신종플루는 가금류에서 돼지를 거쳐 인간에게, 2002년 사스는 박쥐에서 사향고양이를 거쳐 인간에게 전이되었다. 2009년 에볼라와 1981년 에이즈는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전이되었다. 5천만명을 죽인 1918년 스페인 독감은 가금류에서 돼지를 거쳐 인간에게 전이된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자들은 서로 다른 종의 동물을 오랫동안 밀집시켜 놓을 때, 변이와 재조합에 의한 종간 전파로 인간이 감염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코로나19는 동물을 산 채로 가두어 놓고, 잡아 죽이고, 조리해 먹는 재래시장에서 유래했다.

인간이 지금처럼 동물을 먹으면 역병은 계속 창궐할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동물을 집단 감금하여 사육, 전시하기 때문이다. 농장에서는 서로 다른 종의 동물이 밀착할 경우는 드물지만,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진 개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전염이 쉽다.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가 매년 돌아오고, ‘살처분’이라는 이름의 대학살이 자행된다. 재래시장에서는 여러 종의 동물이 가까이 갇혀 있고, 체액과 분비물이 교차하기 때문에 바이러스 변이가 용이하다. 전부 육식을 위해 인간이 동물을 다루는 행태이다.

둘째, 동물의 몸을 먹는 행위 자체가 결정적이다. <킹덤>에서도 백성들이 인육을 먹지 않았으면 역병이 창궐하지 않았을 것이다. 농장과 재래시장에 갇힌 동물에서 아무리 변이가 일어나도 인간이 동물을 먹지 않으면 인수공통감염병이 생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전 인류가 채식을 하면 코로나19 같은 역병이 창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심지어 광우병은 소에게 소를 먹여서 발생했다. 인간이 육식을 위해 초식동물에게 육식을 강요한 것이다.) 극단적인 해법이라 하겠지만, 작금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는 극단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동물 착취를 심각히 재고해야 한다. 육식을 멈추라. 공장식 축산을 철폐하고 야생동물 거래를 금지하라. 우한의 재래시장은 남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에도 끔찍하게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감금, 사육, 소비되는 동물이 많다. 개농장은 특히 위험하다. 2006년 김포에서는 폐사한 닭을 먹인 개로부터 인플루엔자가 발견됐다. 고려대 송대섭 교수는 개 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넘어올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대한민국에서도 언제 인수공통감염병이 나타날지 모른다. 투명성과 사회적 거리두기는 대응책일 뿐이다. 역병의 근본적인 예방책은 탈육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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