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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철우의 과학풍경] 과학자들이 ‘코로나 음모론’ 비판하는 이유

등록 2020-05-12 14:40수정 2020-05-13 02:38

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유전체마다 다른 변이(염기서열 차이)의 규모와 특징을 비교해 생물종 분화와 진화의 계보를 추적하는 유전체 분야가 있다. 수많은 현대인에게 칭기즈칸의 유전체 흔적이 어떻게 퍼져 있는지를 밝힌 연구나, 여러 민족집단의 유전체를 비교해 우리 민족에게 북방계와 남방계의 흔적이 어떻게 섞여 있는지를 밝힌 연구가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 수천, 수만년 동안 인류가 어떻게 이동해 지금의 민족집단으로 퍼졌는지를 추적하는 연구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염기서열 분석 기법과 컴퓨터 성능 덕분에 알 수 없던 과거의 시간은 다시 구성될 수 있다.

과거를 추적하는 유전체 연구는 코로나19 사태 중에도 활발하다. 각지 과학자들이 공유하는 수많은 바이러스 유전체 정보를 바탕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기원을 추적하는 연구는 지금 뜨거운 연구주제다. 물론 연구는 진행 중이어서 하나의 결론이 나온 건 아니지만 대체로 받아들여지는 과학의 설명은 있다. 설명의 줄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야생 박쥐에서 유래했을 것이며 중간숙주 동물을 거쳐 인간에게 넘어왔으리라는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가 충분히 야생에서 유래할 만하고, 그것을 유전체 정보가 충분히 보여준다는 얘기다.

한편에선 신종 바이러스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져 유출됐다는 의혹이 지난 2월 이래 이어진다. 요점은 이렇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하던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연구소에서 신종 바이러스가 만들어졌고 그것이 유출 또는 누출돼 감염병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다. 최근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한연구소의 ‘실수’를 언급하고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면서 이런 의혹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여러 과학자들은 이런 의혹이 음모론일 뿐이라고 비판해왔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유전체 분석 증거에서 얻은 개연성 있는 설명을 외면하고, 쉽게 일어나기 어려운 가능성을 애써 주목하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비판해 지난 3월 미국 과학자 27명은 학술지 <랜싯>에서 “여러 나라 과학자의 게놈 분석 결과는 이 바이러스가 자연에서 유래했다는 압도적 결론을 보여준다”고 강조했고, 다른 과학자 5명은 <네이처 메디신>에 유전체 분석 근거를 들어 신종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지거나 의도적으로 변형된 바이러스가 아닌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무엇보다 이런 의혹의 가장 큰 약점은 주장의 크기에 걸맞은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한연구소 기원설과 관련해 최근 미군 합참의장은 그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직 없다고 말했다. 비상한 주장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비상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말은 과학 논란 때 종종 강조되는 격언인데 이번에도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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