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철우 ㅣ 서울과학기술대 강사(과학기술학)
세계보건기구(WHO) 웹사이트에는 날마다 코로나19 상황을 알리는 숫자, 그래프, 지도, 갖가지 방역과 과학 자료들이 가득하다. 긴박한 현황을 알리고 또 갈 길을 안내한다. 많은 자료 중에는 백신 연구개발 소식도 있다. 22일 현재 코로나19 백신 후보 현황을 보면, 임상평가를 받는 백신 후보는 모두 10개에 이른다. 여기에 이르지 못한 전임상 후보도 114개나 된다. 빌 게이츠가 최근 밝힌 대로 ‘유망한 백신 후보는 8개 내지 10개’라는 희망을 품을 만한 근거는 충분해 보인다. 그렇더라도 안전성과 효과 검증의 다리를 다 건너지 못했으니, 지금은 급한 마음을 달래며 백신을 기다려야 한다.
다른 자료에선 코로나19 백신이 갖춰야 할 안전성과 효과의 요건으로 제시된 세계보건기구 기준이 눈에 띈다. 요건은 두 갈래로 제시된다. 하나는 효과는 조금 낮아도 감염병 발병 지역에 응급으로 쓸 백신의 요건이며, 다른 하나는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면역효과를 내는 백신의 요건이다. 응급용은 1회 접종으로 2주 안에 효과를 내야 한다. 응급과 장기 백신 사이에는 안전성 요건도 다르다. 그만큼 응급 백신의 요구가 절박하다는 뜻이다.
많은 걸 바꿔야 하는 팬데믹 시대에 백신이 유일 해법은 아닐 것이다. 더 깊은 변화가 필요하다. 그렇더라도 당장 위험의 해법으로 백신에 거는 기대는 간절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백신 소식을 둘러싸고 롤러코스터 같은 소동이 지난주에 벌어졌다.
미국 생명공학기업 모더나의 백신 후보가 임상 1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얻었다는 발표가 있었는데, 곧 떠들썩한 세계 뉴스가 됐다. 반응은 뜨거웠고 주식시장도 들썩였다. 하지만 싸늘한 전문가 평가가 이어지고 분위기는 일변했다. 모더나 기업의 ‘머니 게임’을 의심하는 기사도 있었다. 성급하게 부풀려진 성과 발표였으며 데이터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더나의 신개념 백신은 분명 희소식이다. 현재로선 가장 빠르고 가장 유망한 후보로 평가된다. 하지만 성급한 발표는 백신을 기다리는 마음을 이용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다.
120개 넘는 백신 후보의 연구개발이 각지에서 이뤄지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도 경쟁이 벌어진다. 경쟁이 안전성과 효과 검증이라는 백신 로드맵 바깥에서 언론플레이와 자본시장, 또는 정치 상황과 연결된다면 코로나19 혼란에 또 다른 혼란을 더할 것이다. 백신을 연구하는 재미 과학자 문성실 박사는 페이스북에서, “백신들이 데이터가 아닌 언론을 통해 서로 경주하는데 그때마다 우리가 울렁거리면 멀미 난다”고 걱정했다. 그의 적절한 처방은 “앞으로 백신 뉴스에 일희일비 말고 한 뜸 들이고 지켜보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