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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재난지원금은 선심 쓰듯 주는 ‘개평’이 아니다 / 김회승

등록 2021-01-05 15:35수정 2021-01-06 02:40

김회승 ㅣ 논설위원

코로나 방역으로 영업금지가 연장된 헬스장들이 ‘오픈 시위’를 시작했다. 헬스장 업주 대표가 ‘방역수칙을 지키면서 문을 열자’는 글을 올렸더니 전국에서 500여곳이 참여했다. “과태료를 물리려면 물리라”는 것이다.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헌법소원도 낼 예정이다. 방역 당국의 행정명령에 대놓고 공식적으로 반발한 ‘사태’는 몇몇 교회를 빼곤 처음 있는 일이다.

방역 당국은 업종별 영업 금지·제한의 형평성을 세밀히 따져보겠다고 한다. 과연 거리두기 세부 규정을 정교하게 재조정하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럴 것 같지 않다. 피시방 등 앞서 문을 닫은 업주들은 훨씬 더 막막할 게다. 오래전부터 저녁 장사를 사실상 접은 음식점이나 부분 영업이 허용된 태권도 학원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를까. 도저히 더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필라테스·피트니스 사업자연맹 관계자들이 5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내체육시설의 운영 금지와 관련해 실효성과 형평성 있는 대책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필라테스·피트니스 사업자연맹 관계자들이 5일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내체육시설의 운영 금지와 관련해 실효성과 형평성 있는 대책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몇달 전만 해도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의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영업 손실을 감수하고 저축을 깨고 대출을 내며 버텼다. 그렇게 일상의 복원을 기다린 게 1년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말 착한 편이다. 유럽에선 이동제한과 영업금지 조처가 강화될 때마다 기본권 제한을 규탄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 자영업자와 일용직들이 돌을 던지고 거리를 불태우기도 한다. 고통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이들이 생사의 임계점에 서 있다. 그나마 우리는 오래 버틴 셈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독일의 경우를 보자. 독일은 3차 유행이 확산한 지난해 12월부터 슈퍼·약국 등 필수 업종을 제외한 모든 상점과 학교 문을 닫았다. 눈에 띄는 건, 봉쇄 조처와 동시에 내놓은 과감한 지원 대책이다. 피해 업종에 모두 112억유로(약 15조원)를 투입키로 했다. 인건비·임대료 등 고정비의 최대 90%를 지급하는 규모다. 연방정부 당국자의 말이 인상적이다. “가게 문을 닫아도 고용과 생계가 유지된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방역이 성공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가. 지금까지 세차례 재난지원금을 조성했다. 하지만 한번도 정부가 먼저 준비해 지원에 나선 적은 없다. 그때그때 여론의 압력과 국회 등쌀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지원 계획을 내놨다. 그러니 지원 규모도 대상도 방식도 다 주먹구구다. 코로나 상황은 더 심각해지는데 지원액(직접지원액 기준)은 14조3천억→7조8천억→6조7천억원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정부는 여러 차례 “코로나 극복에 과감하게 재정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말 그럴까. 민망한 사실이 최근 통계로 확인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지난해 한국의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4.2%로 전망했다. 42개 주요국 중 네번째로 적자 폭이 작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의 중소국들을 빼면 사실상 1위다. ‘전시에 준하는 재정 투입’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결과다. 방역 성과 덕분에 다른 나라보다 재정 투입을 최소화했다고 자화자찬할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이재명 경기지사가 “어려운 국민들 삶을 돌보지 않고 곳간을 지킨 게 뿌듯하냐’고 일갈했겠나.

다시 독일로 가보자. 독일 정부는 올해 예산 5천억유로(약 667조원) 중 1800억유로(약 240조원)를 국가부채로 조달한다. 지난해와 올해 예산의 40%가 빚이다.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해 2025년까지 국채 조달 계획도 따로 내놨다. 독일은 최근 6년간 신규 대외채무가 전혀 없던 나라다. 부자 나라여서 통 크게 쏘는 걸까. 독일 재무장관은 의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지원하는 것이 지원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회비용을 계산한 경제적 판단이라는 애기다.

가계와 기업이 어려움에 처해도 나라 곳간을 우선하는 건, 달리 말하면 경제적 고통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외환위기와 금융위기를 모두 국민이 떠안으며 극복했다. 국가는 한 게 별로 없다. 주요국들은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계부채를 빠르게 국가부채로 이전했다. 국가 리스크가 개인 리스크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우리는 거꾸로였다. 금융위기를 겪으며 가계부채는 확 커졌지만 정부가 떠안지 않았다. 코로나 위기가 지나면 부채 격차는 훨씬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여당 안에서 ‘2차 전국민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온다. 재난지원금은 선심 쓰듯 주는 개평이 아니다. 국민의 희생과 인내에 정당한 보상으로 답해야 한다.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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