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통치구조의 기본 원리인 권력분립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국가권력이 집중됨으로써 독단화·절대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안됐다. 로크는 1690년 <시민정부론>에서 국민이라는 최고권력 아래 입법권과 집행권, 동맹권(외교권)을 분립하는 방안을 주창했다. 이 중 입법권이 더 우월하다고 봤고, 사법권은 따로 분리하지 않았다. 몽테스키외는 1748년 <법의 정신>에서 입법·집행·사법권의 대등한 분립을 주장했다. 사법권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봤다.
삼권분립은 국가권력을 분산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분산된 권력 상호 간에 권한의 오남용을 감시·억제하는 ‘견제와 균형’ 또한 핵심 요소로 삼는다. 그렇지 않으면 각각의 권력이 독단화·절대화할 수 있고, 결국 주권자인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권은 법관 각자의 고도의 양식과 함께 외부의 견제 장치가 필수적이다. 물론 재판에 간섭하거나 판결 내용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삼권분립의 본질을 침해한다.
사법농단은 대통령과 법원 수뇌부가 결탁해 사법권의 독립적 행사를 침해한 사건으로, 권력의 분산을 형해화한 전형적인 삼권분립 위반이다. 그러나 형사처벌이나 엄중한 징계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는 수단은 헌법이 견제와 균형 원리에 따라 국회에 부여한 법관 탄핵소추뿐이다. 미국에서도 재판 개입 혐의를 받는 고위 법관을 탄핵한 사례가 있다. 미국은 최종 심판도 우리처럼 제3의 기관(헌법재판소)이 아니라 상원의회가 맡는다.
사법농단에 연루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김명수 대법원장이 국회의 탄핵 움직임을 이유로 반려한 것을 두고 삼권분립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탄핵소추를 피해 가는 것이야말로 견제와 균형 원리를 무력화하는 삼권분립 위반이다. ‘사법부 수장이 법관을 보호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법부를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는 절대권력으로 만들자는 말이나 매한가지다. 이번 탄핵을 비판하는 것은 삼권분립 위반 사건을 덮기 위해 다시 삼권분립을 부정하자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
박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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