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각)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서 열린 ‘양자 석학과의 대화’에 앞서 도서관을 찾아 아인슈타인의 학적부 등 사료 등을 살피고 있다. 취리히/연합뉴스
21일 귀국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스위스 순방이 ‘이란 실언 후폭풍’에 뒤덮인 채 끝났다. 101개 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간 이번 순방에서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경제 외교’ 성과를 내세우려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경솔한 발언으로 벌어진 이란과의 외교 공방전은 제대로 수습되지 않고 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아랍에미리트를 국빈 방문한 윤 대통령은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으로부터 300억달러(약 37조원)를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등 경제 외교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자평했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는 글로벌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세일즈 외교를 적극적으로 펼쳤다.
하지만 이번 순방을 상징하게 된 것은 윤 대통령의 말 한마디였다. 그는 지난 15일 아랍에미리트에 파병된 아크부대 장병들을 격려하는 자리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가장 위협적인 국가는 이란이고 우리 적은 북한”이라고 발언했다. 이란 정부는 바로 다음날 “외교적으로 부당하며 전적으로 무지한 것”이라고 항의했다. 18일에는 이란 주재 한국대사를 초치해 미국 제재 때문에 한국의 은행에 묶여 있는 70억달러(8조6600억원)의 원유 대금 문제까지 제기하며 “관계 재검토”를 거론했다. 이에 한국 외교부도 주한이란대사를 ‘맞초치’하는 등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이란 정부의 강경 대응 배경에는 히잡 시위 탄압으로 어려움에 처한 국내 상황에 70억달러 동결 자금 문제 등 한국 정부에 쌓인 불만 등이 겹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를 일으킨 책임은 명백히 윤 대통령의 경솔한 발언에 있다. 복잡한 중동 정세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개입한 모양새인데다, 어려운 한-이란 관계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다. 정부는 이번 사태로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우리 선박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안전 대책을 협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가 사태 진화에 분주한 가운데,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대통령실은 19일 “다소 이란 쪽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며 원인을 이란 쪽으로 돌리는 태도를 보였다. ‘바이든-날리면’ 비속어 파문 때처럼, 여권 정치인들은 대통령이 ‘무오류의 지도자’라도 되는 듯 옹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윤 대통령이 나서 책임지는 자세로 해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해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