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을 마치고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 대법원장의 임기는 24일 종료됐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24일 종료됐다. 후임으로 지명된 이균용 후보자의 임명동의 절차가 국회 파행으로 지연되는 가운데 자질과 도덕성 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장 공석 사태가 초래된 것은 불행한 일이지만, 시대가 요청하는 자질을 갖춘 대법원장을 임명하는 게 더욱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도 ‘김명수 체제’ 6년과 사법부에 남겨진 과제를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6년은 대법관 인적 구성이 가장 다양했던 시기다. 여성 대법관이 역대 최대인 4명에 이른 때도 있었고, 법원·검찰과 인연이 없는 순수 재야 출신 대법관도 배출됐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종전의 낡은 법리를 깨는 참신한 판결을 다수 내놓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가능했을 것이다. 지난 21일 김명수 체제의 마지막 전원합의체 판결로 40년 묵은 강제추행죄 판례를 현실에 맞게 변경한 것은 상징적 장면이다. 이 밖에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일 배상청구권 인정 판결,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인정 판결 등 과거사·인권·노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판결이 많았다.
그러나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법관들에게 줄줄이 무죄를 선고해 ‘제 식구 감싸기’를 벗어나지 못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 장애인 이동권, 양심적 병역거부 등 문제에서 전향적 판결의 성과를 상쇄하는 소극적 판결이 나오기도 했다.
사법농단의 후폭풍 속에 폐쇄적 관료주의 극복이라는 개혁 과제를 안고 출발한 김명수 체제는 대법원장 권한을 분산하고 사법행정을 투명화하는 데 일정한 성과도 거뒀다.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 폐지와 법원장 후보 추천제, 전국법관대표회의 상설화 등은 사법 관료화를 끊는 의미 있는 변화였다. 반면 지난 6년 사이 재판 기간이 2년을 넘는 장기 미제 사건이 대폭 증가하는 등 갈수록 심각해지는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사법농단 관련자의 사표 수리를 둘러싼 ‘거짓말 논란’도 오점으로 기록됐다.
사법부는 시대 변화와 국민 눈높이에 맞게 법과 정의의 기준을 세워가는 막중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를 위해 대법원의 다양성은 무엇보다 중요한 조건이다. 입법·행정부를 견제하는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독립성도 놓쳐선 안 되는 가치다. 이런 측면에서 김명수 체제의 성과는 이어가면서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인물이 새 대법원장이 되어 사법부의 위상과 신뢰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