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정수 ㅣ 논설위원
“이러다 다 죽겠다. ‘신종 코로나’에 걸려 죽는 게 아니라, 굶어 죽게 생겼다.”
최근 신문사로 걸려온 독자전화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한다는 그는 벼랑 끝에 몰린 절박한 상황을 호소했다. 거리에는 사람이나 차량이 눈에 띄게 줄었다. 식당과 상가는 손님이 없어 한산하다. 모임과 행사도 잇따라 취소된다. 감염자가 다녀간 것으로 알려진 업소는 즉시 문을 닫는다. ‘신종 코로나’가 아니라 불안과 공포 때문에 모두 망하겠다는 얘기가 과장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복병을 만난 한국 경제에 과도한 불안·공포는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수출과 생산이 차질을 빚는 가운데 소비심리까지 얼어붙어 내수도 울상이다. 정부도 비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9일 우한 교민 임시거처인 아산·진천을 방문하고,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며 “과도한 불안과 공포는 오히려 경제에 해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없애는 1차 책임은 당연히 정부에 있다. 방역에 허점이 없도록 해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다행히 신종 코로나가 아직은 중증이 아니고, 사망자도 없다. 의료계가 꾸린 신종 코로나 대책위원회도 “과도한 불안이나 과잉대응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런데도 과도한 불안·공포가 확산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신종 코로나를 정략의 도구로 이용하는 자유한국당을 빼놓을 수 없다. 우한 교민의 임시거처로 아산·진천이 정해지자, 정부가 총선을 고려해 여당 지역구인 천안 대신 야당 지역구인 아산·진천으로 바꾸었다는 억지 주장을 편 게 대표적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보수언론이다. ‘천안은 지역구 3곳 모두 여당…한국당 “야당지역 골라 바꾼 것 아니냐”’(조선일보) 불안과 공포를 키우는 확성기 노릇을 한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천안 간다더니 우리가 호구냐”…아산·진천 주민, 트랙터로 도로 봉쇄’(한국경제) 보수언론은 아산·진천 주민의 반발도 집중 부각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우한 형제님들, 생거 진천에서 편히 쉬어가시오”라는 환영 펼침막을 내걸어, 큰 감동을 선사했다. 같은 언론인이라는 게 부끄러울 정도다.
제3국 감염자가 처음 발생하자 ‘광주 모녀환자 272명 접촉…병원발 제2메르스 우려’(중앙일보)라고 보도했다. 방심은 금물이지만, 38명이 숨진 메르스 사태와 아직 사망자가 한명도 없는 신종 코로나를 직접 연관짓는 게 언론의 신중한 태도일까?
언론이 정부의 미비점을 지적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연일 정부 방역에 대해 “우왕좌왕” “혼선” “구멍” 기사로 도배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가짜·과장 뉴스로 정부 불신을 부추기고 불안을 조장하는 것은 다분히 의도가 엿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황제의 노예가 돼도 좋은가’(중앙일보) ‘우한 폐렴…국가란 무엇인가’(한국경제) 정부가 중국 후베이성에만 입국제한 조처를 내린 것을 공격한 칼럼은 그 속셈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중국 입국제한 지역 결정은 어려운 문제다. 방역 효과와 함께 중국과의 밀접한 경제·외교관계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정부가 국민의 안전 보장을 등한시한다고 몰아붙이고, 심지어 대통령을 시진핑 노예로 비하하는 게 정상일까?
‘커지는 중국발 경제쇼크…정책 대전환해 전화위복 삼아야’(한국경제) ‘경제 기조 전환으로 전화위복 절박하다’(조선일보) 보수언론이 위기 극복을 내세워 뜬금없이 경제정책 기조 전환을 요구하는 것은 또 다른 단서다. 보수언론은 그동안 정부의 혁신적 포용성장 정책을 반기업·반시장·친노조라고 맹공격했지만, 대통령의 개혁 방침 고수로 성공하지 못했다.
‘4·15는 ‘오기 경제’ 심판의 날’(문화일보)은 보수언론의 의도를 더욱 명확히 보여준다. 총선에서 정부의 경제정책을 심판하자는 주장이다. 결국 ‘신종 코로나’의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목적은 정부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고, 경제를 어렵게 해서,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에 승리를 안겨주려는 것이다.
수적으로 우세한 보수언론이 이런 짓을 하는데, 나라와 경제가 잘된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보수언론의 행태는 전염병과 힘든 전쟁을 하는 정부와 국민의 등을 향해 총질을 하는 것과 같다. 전시라면 즉시 처형감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기레기’ 취급을 받는 현실과도 무관치 않다.
jskwa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