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운송, 배달 노동자 과로사 대책 촉구 전국 동시다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대책위)가 17일 추석 택배 발송이 본격화하는 21일부터 택배 분류작업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이달 초부터 추석 전 분류작업 인력 투입, 과로사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해왔다. 살인적인 노동시간으로 과로사한 택배노동자가 올해만 7명이다. 추석 연휴 택배 폭증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가 17일 뒤늦게나마 대책을 내놓은 것은 다행이다.
지난 10일 대책위가 내놓은 택배노동자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올해 1~8월 주간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이었다. 지난해 전체 노동자 평균의 두배 가까운 수치다. 코로나 확산으로 온라인쇼핑이 급증하면서 택배 물량도 평년보다 30%가량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노동시간만큼 수익은 증가하지 않았다. 건당 배달수수료를 받는 배송업무보다 무보수인 분류작업이 더 많이 늘어난 탓이다. 분류작업은 초장시간 노동의 핵심적인 배경이다. 비대위는 “하루 13~16시간 노동의 절반을 분류작업에 매달린다”고 토로한다.
택배노동자들의 가장 시급한 요구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기사 5명당 분류작업 인력 1명을 배치해달라는 거다. 보통 추석 연휴 때 택배는 평소보다 20%가량 늘어나는데, 올해는 예년보다 대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이동 자제를 권고하면서 귀성 대신 택배로 선물을 보내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한시적으로라도’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요구하는 건 목숨을 지키게 해달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다음달 16일까지 하루 평균 1만여명의 분류작업 인력 추가 투입 등을 포함한 대책을 17일 내놨다. 정부는 택배노동자들이 심야까지 배달을 하면서 건강과 안전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 빚어지지 않도록 세부대책까지 시급히 마련하길 바란다. 한편 우체국 집배원들이 소속된 전국우정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어 택배노동자들이 물류작업을 중단하면 집배원들이 미처리 물량을 떠안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특정 노동자들의 고통이 또다른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전가되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비대면이 일상화되면서 택배노동자들의 공익적 역할도 그만큼 커졌다. 하지만 이들의 몸값은 거꾸로 가고 있다. 7명의 과로사는 택배노동의 강도가 임계점에 와 있음을 보여준다. 택배 물량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택배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보장할 근본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