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내세운 오세훈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국민의힘이 재건축 규제 완화와 보유세 인하 주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사진은 9일 서울 용산구 유엔빌리지 인근에서 바라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4·7 재보궐선거가 끝나자 마자 ‘재보선 민심’을 들어 보유세 강화와 재건축 규제 흔들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9일 <한국방송>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 나와 “부동산 가격 폭등은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주 원대대표는 또 “소득도 없는 분들에게 집을 처분해야만 세금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정책”이라며 “바로 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이날 당 회의에서 “4월 국회에서 부동산세 경감 등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이 민심을 제대로 읽고 이런 얘기를 하는 건지 의문이 든다.
이번 재보선에서 집값 폭등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과 불만이 ‘정권 심판론’으로 분출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부동산 민심’도 엄밀히 들여다보면 계층과 지역에 따라 확연히 갈린다. ‘집 부자’들이 많이 사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는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강화와 재건축 규제에 불만이 높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취임 1주일 내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를 공약한 오세훈 시장은 강남 3구에서 69.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전체 득표율 57.5%보다 높다. 특히 강남구에선 73.5%라는 몰표가 나왔다. 그러나 서울 전체 가구의 절반이 넘는 무주택 가구(2019년 기준 51.4%) 등 서민·중산층까지 종부세 인하와 재건축 규제 완화를 원한다고 보기 어렵다. 이들은 내집 마련의 기회를 빼앗아가는 투기 억제와 저렴하면서 질 좋은 주택 공급 확대를 바란다. 국민의힘은 집부자들의 이해를 전체 민심인 양 호도해선 안 된다.
또 문재인 정부의 집값 안정 실패 이유를 보유세와 재건축 규제에서 찾는 것도 무리다. 장기간의 저금리 상황에서 넘쳐나는 시중 유동성이 생산적인 분야로 흐르지 않고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는 것을 막지 못한 게 결정적인 이유다. 만약 보유세를 강화하지 않고 재건축·재개발을 무분별하게 풀었다면 집값은 더 치솟았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의 주장처럼 지금 보유세를 내리고 재건축·개개발을 풀면 서울은 순식간에 투기판이 될 수 있다.
공공 주도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인 ‘2·4 대책’ 이후 이른바 ‘공포 매수’가 줄어들면서 집값 상승 폭이 둔화되고 있다. 9일 한국부동산원 자료를 보면, 서울 아파트 시장이 넉달 만에 매수 우위에서 매도 우위로 돌아섰다. 국민의힘은 가까스로 진정세를 찾아가는 부동산 시장에 다시 기름을 부어서는 안 된다. 주거 안정과 투기 근절을 바라는 시민 다수의 민심을 제대로 읽고 공급 확대와 투기 억제에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