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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뒤늦게 “국익 선택”…재벌 특혜 논리 반복

등록 2021-08-13 19:07수정 2021-08-14 12:00

이재용 가석방 출소한 날
과거정부와 판박이 입장 밝혀
“국민, 반도체·백신 역할 기대”
풀어주는 이유 우회적 표현도

진보정당 “문 정부, 공약 도루묵”
문 대통령이 2019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이 2019년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가석방으로 풀려난 13일, 청와대가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인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벌 특혜 시비가 나올 때마다 이전 정부가 내놓았던 ‘국익 논리’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재용 부회장의 가석방을 통해 찬성과 반대 의견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이처럼 말했다고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문 대통령은 “반대하는 국민의 의견도 옳은 말씀이다. 한편으로는 엄중한 위기 상황 속에서 특히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들도 많다”면서 “국익을 위한 선택으로 받아들이며, 국민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이 부회장 가석방 문제는 법무부 소관이라며 침묵해 왔다. 하지만 정의당 및 시민단체는 가석방 기준까지 낮춰가며 국정농단에 연루된 재벌 총수를 풀어주는 데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설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저희들도 국민들께서 말씀을 해주셔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하는 의견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어느 시점에 대통령께서 언제 말씀을 하셔야 되는지 판단하고 있었다”고 했다. 법무부의 가석방심사위원회가 열린 지 나흘만이자 이 부회장이 구치소에서 나온 이날 뒤늦게 입장을 밝힌 것은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이상 외면할 순 없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정부에 대한 지지층의 실망감을 달래야 한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반도체와 백신 분야에서 역할을 기대하며 가석방을 요구하는 국민”이란 말로, 이 부회장을 풀어주는 이유를 우회적으로 밝혔다. 삼성은 지난 5월 문 대통령의 방미 때 19조원이 넘는 파격적인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내놓았을 뿐 아니라, 정부의 화이자 백신 구매 계약 과정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이 부회장의 가석방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한미정상회담 후속 조치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구축, 백신 확보 등을 명분으로 내걸었다”며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로서는 이런 국민의 요구가 있으니 이 부회장이 이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쪽은 이 부회장 가석방 뒤 취업제한 해제 조처 등의 요구가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 “법과 절차에 따라서 법무부가 할 일”이라고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그룹사노동조합대표단 관계자들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규탄하고 있다. 의왕/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그룹사노동조합대표단 관계자들이 13일 오전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가석방을 규탄하고 있다. 의왕/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앞서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는 이날 이 부회장이 수감돼 있던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재벌을 개혁하고 경제 기득권의 초법적 사익 추구 행위를 관용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공약은 말짱 도루묵으로 돌아갔다”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등 1056개 노동·인권·시민사회단체도 이날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의 의중과 관계없이 법무부장관이 단독으로 이재용 가석방을 결정했다는 것을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라면서 “문 대통령 스스로 재벌총수에 대한 사면은 물론 가석방 특혜도 경제정의에 반한다고 주장해온만큼 이번 결정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모든 국민 앞에 떳떳이 밝힐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날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6년 전 재벌의 가석방을 비판한 언급을 한 것과 이번 이 부회장 가석방 결정이 배치된다는 지적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고 했다.

이완 심우삼 기자 w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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