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과 서훈 안보실장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 관계장관회의를 시작하기 앞서 자료를 보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안보 우려’를 명분으로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속도전’에 제동을 걸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무리한 국방부 청사 집무실 이전이 자칫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책임은 문 대통령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5월9일 자정까지는 자신의 임기라는 점을 분명히 상기시킨 것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이날 전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결론은, 5월10일까지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계획은 시일도 촉박하고 준비가 미비해 ‘무리수’라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의 이전이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발언에 이런 입장을 압축해 담았다. 특히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상임위원들뿐만 아니라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원인철 합참의장 등이 모두 모인 확대관계장관회의 형식이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으로 당장 이삿짐을 싸야 할 처지였던 합참 등 국방 분야는 물론, 리모델링 등 이전 비용으로 윤 당선자가 요청한 496억원의 예비비를 다룰 기재부까지 참석해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결론을 모으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날 회의에선 윤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며 국방부와 합참 연쇄이동까지 확정한 건 당선자 신분과 인수위 권한을 넘어선 행위라는 비판도 나왔다고 한다.
더욱이 “국방부와 합참, 관련 기관 등은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림 없이 임무에 임해주기 바란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군 통수권자로서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5월9일 자정까지 국방부와 합참은 현 위치에서 대비 태세를 유지하라는 명령이다. 윤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계획에 따른 연쇄 이동을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승인할 수 없다는 뜻을 군에 명확히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이 미래 권력인 윤 당선자와 갈등을 무릅쓰면서 이렇게 명확히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최근 북한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정권교체기에 준비되지 않은 청와대-국방부-합참의 연쇄 이동은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은 정권교체기에 항상 한반도 긴장 상황을 높여왔다. 문 대통령도 2017년 5월 취임 직후부터 북한의 연쇄적인 탄도미사일 발사 상황을 접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에 전력을 쏟아부은 경험이 있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자의 요청을 수용해 국방부와 합참 이전 작업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문 대통령의 몫이 된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자에게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을 배제하고 차분한 논의를 권고한 것은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윤 당선자가 문 대통령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사전 협의도 없이 5월10일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청와대를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힌 것도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윤 당선자가 자신의 취임에 맞춰 청와대를 개방하려면 그 이전에 관저와 본관, 비서동인 여민관 등의 주변 정리는 물론 공원화를 위한 공사를 대대적으로 벌여야 한다. 이는 문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왔던 “임기 마지막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에 배치된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취임하기도 전에 먼저 나가라고 하는 거냐”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대통령 집무실 이전 협조가 잘되더라도 국방부·합참 등의 안보 역량이 안정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4월에는 북한의 연례적 행사(태양절·건군절)가 예정돼 있고, 그 가운데 올해 들어서만 열번째 미사일 발사를 하는 등 북한의 미사일 발사 흐름이 지금 지속되고 있다”며 “4월 중에는 한-미 간 연례적인 훈련 행사가 있는 시기인 만큼 4월 이 시기가 한반도의 안보에 있어서 가장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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