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친조카인 노지원(43)씨의 '바다이야기' 연루설이 불거지면서 청와대의 대통령 친인척 관리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노씨가 참여정부 출범 후 우전시스텍 기술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대통령과의 친척 관계를 활용해 이권에 개입하는 등 문제가 될 만한 행위를 했느냐가 관심의 초점이다.
노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기회있을 때마다 엄정한 친인척 관리 방침을 표방해왔고, 이를 실천해온 점도 검찰 수사로 확대된 이번 사태 추이에 관심을 더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친인척 등 주변 문제에 있어서는 각별한 주의와 함께 엄정 대처 원칙을 견지해왔다.
청와대는 노대통령 취임 초기인 2003년 3월부터 대통령 친인척의 부조리를 원천 차단하기 위해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감시체계를 구축한 이후 900여명에 이르는 친인척을 대상으로 상시 관리시스템을 운영해왔다.
노 대통령 자신 또한 주변에서 가혹하다는 말을 들을 만큼 가족과 친인척 문제에 대해선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온 게 사실이다.
참여정부 출범 때 친형인 건평씨에게 유력 인사들이 찾아가 장관 후보 추천을 부탁했다는 언론 보도에 비서관들을 고향에 파견해 진상조사를 했고, 건평씨 처남인 민경찬씨의 거액 펀드 조성 의혹 사건에 대해선 철저한 조사와 함께 대국민 사과를 했다.
노 대통령이 친인척 문제에 얼마나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는지는 그간 기자회견 등을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안 가결 전날인 2004년 3월11일 민경찬 펀드 문제 등 친인척 관리 문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골치가 아프다"는 표현을 써가며 고충을 토로한 바 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노지원씨도 당시 기자회견에서 노 대통령이 거론한 문제의 조카 중 한 사람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노 대통령은 당시 회견에서 "조카가 KT에 다니다 어느 회사 사장으로 영입되고 그래서 주식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못하게 했다. 그 감냥이면 `이사 이상 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명함 들고 다니면서 덕을 보고 싶겠지만, 지금 중국 영업에 전념하고 있다고 듣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참여정부, 절반의 비망록'이란 전직 부속실 참모가 쓴 책에서도 지원씨가 우전시스텍으로부터 CEO 자리와 함께 거액의 주식 옵션을 제안받았다가 노 대통령의 호통과 청와대의 잇단 경고로 이를 포기한 사실이 들어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20일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지원씨와 관련된 좀더 구체적인 뒷얘기를 소개했다. 이 글에 따르면 지원씨는 우전시스텍의 사장 제의를 받았을 당시 민정수석실의 담당 비서관과 함께 노 대통령을 30분간 면담했다. 그 자리에서 노 대통령으로부터 "사장 하지 마라"는 단도직입적인 말을 듣고는 "삼촌이 이런 식으로 내 앞길을 막아도 되는 겁니까"라며 눈물을 글썽였다는 것이다.
그 자리는 "꼭 그 회사를 다니려거든 이사 정도만 하라"는 민정수석실의 당부에 지원씨가 "대통령의 뜻이냐. 직접 확인해 봐도 되냐"며 면담을 요구해 이뤄졌다고 한다.
민정수석실은 지원씨의 연루설이 제기된 이번 사건 과정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원씨가 지코프라임과 우전시스텍의 인수합병 계약 체결이 완료된 지난 5월23일 우전시스텍 부사장으로부터 그 사실을 최초로 통보받은 이후 지원씨와 접촉을 강화해 그가 퇴사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
전해철 민정수석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노씨와는 한 달에 한 두번 정도는 연락을 하고, 또 어떤 상황이 있을 때는 당연히 일주일에 한 두번도 한다"며 "이번에도 6월로 가면서 노씨가 고민하고 있구나, 더 나가서 본인도 대강 정리를 하는 구나하고 알게 돼서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어떤 친인척은 "옛날 민정수석실은 취직도 시켜주고 도와줬다는데 당신들은 뭐하는 사람들이냐"며 청와대에 강한 불만을 터뜨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친인척 문제에 대한 노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 같은 태도는 역대 정권에서 때마다 반복됐던 친인척 비리 예방에 적지않은 성과를 낳은 것도 사실이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민경찬 펀드 의혹만 해도 검찰조사결과 실체 없는 자작극으로 드러났고, 그 이후 게이트로 규정지을 만한 친인척 비리사건이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점은 이를 반증한다.
하지만 불법 도.감청 등을 활용한 국정원 등 정보기관의 '뒷조사'가 엄격히 금지돼 있는 등 친인척 관리시스템이 효율성 측면에선 과거 정권보다 못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따라서 이번 노지원씨 사안에서 보듯 청와대에서 미처 인지하기 어려운 비리가 생겨났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관리대상인 친인척은 900여명이지만 사회적 유혹에 노출될 수 있는 사람만 관리하는 것일 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그러나 집중 관리대상자 가운데 일탈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대해선 그때그때 경고하는 등 대응조치를 취해왔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jahn@yna.co.kr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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