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25일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김종필 전 국무총리 빈소를 찾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한 뒤 묵념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빈소에서 직접 조문하지 않는 대신 “유족에게 예우를 갖춰 애도를 표하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이날 반대 여론이 적지 않은 상황 속에서 김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이 김 전 총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러 가는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유족들에게 예우를 갖춰 애도를 표하라’는 뜻을 전달했다”며 “문 대통령 조문은 이것으로 갈음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조문하지 않기로 한 것은 김 전 총리와 별다른 인연이 없는데다 현직 대통령이 전직 총리를 조문한 전례가 많지 않은 점을 고려한 것 같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취임 뒤 (지금까지) 조문을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가 2012년 총선 안팎이고, 김 전 총리는 그보다 몇년 전(2004년) 정계은퇴를 해 인연이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과 김 전 총리는 정치적 지향점에서도 상반됐다. 김 전 총리는 1995년 자유민주연합 창당을 이끌고 충청 맹주를 자처하는 등 지역주의에 기댔다. 반면 문 대통령은 지역주의 타파를 목표로 삼았다. 그는 여당 압승으로 끝난 6·13 지방선거 닷새 뒤인 18일 “지역주의 정치는 이제 끝나게 됐다. 제가 정치에 참여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를 이룬 셈”이라고 말했다.
김 전 총리는 문 대통령에게 마뜩잖은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2016년 인터뷰에서 “문재인은 이름 그대로 문제”라고 했던 그는 지난해 대선 국면에서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문재인이가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당선되면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나러 간다고. 이런 놈을 뭐를 보고선 지지를 하느냔 말이냐”고 거친 말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펴낸 대담 에세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완전히 새로운 나라, 문재인이 답하다>에서 “(김 전 총리는) 많은 문제를 가슴에 품고 고뇌하고 있는 제 모습을 정확하게 본 노련하고 노회한 은퇴 정치인”이라면서도 “김 전 총리는 오래전의 고인 물로, 옛 정치인들은 원로 반열에 올라가고 후진한테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날 정부를 대표해 김부겸 장관은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된 김 전 총리 빈소를 찾아 영정 왼편에 무궁화장을 올렸다. 김 장관은 “관례에 따라 역대 총리를 지낸 분들은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최근 돌아가신 전직 총리 네 분 가운데 이영덕·남덕우 전 총리는 (별세 뒤) 무궁화장을 추서받았고, 박태준·강영훈 전 총리는 생전에 무궁화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날도 김 전 총리 훈장 추서에 대한 반대가 이어졌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정부는 훈장 추서가 자칫 군사 쿠데타와 유신 체제라는 과거 역사의 면죄부가 될 것이란 우려를 귀담아들어야 한다”며 “훈장 추서 계획을 중단하라”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김 전 총리 훈장 추서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 `촛불정신을 기만하는 행위'라는 제목의 청원 177건이 올라왔다.
이날 김 전 총리 빈소에는 정원식·고건·황교안·정홍원·이현재 전 국무총리 등 조문객 발길이 이어졌다. 김 전 총리를 ‘서산에 지는 해’라고 했던 이인제 전 의원도 조문했다.
성연철 김보협 정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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