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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사상 최악 ‘병참 실패’ 집단감염에도 ‘아래로’ 책임 미루는 군

등록 2021-07-25 15:37수정 2021-07-25 17:12

청해부대 34진 90% 확진은 철저한 병참 실패
용도 안 맞는 진단키트 검사가 구축함 무력화
국방부, 자성 담긴 ‘감사 결과’ 내놓을지 주목
서욱 국방장관이 20일 국방부 기자 회견장에서 청해부대 34진의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서욱 국방장관이 20일 국방부 기자 회견장에서 청해부대 34진의 코로나19 집단 감염 사태에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아프리카 인근에 파병됐던 청해부대 34진의 90%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태는 한국 군 역사에 길이 남을 ‘병참 실패’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 통제 밖에 있는 적의 저항으로 목표를 완수하지 못하는 ‘작전 실패’에 대해선 ‘병가지상사’라 여기고 지휘관을 엄히 처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선 부대가 최적의 조건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병참의 실패는 우리의 능력과 의지로 얼마든 피할 수 있는 비극이라는 점에서 작전 실패보다 더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국방부는 원인 규명을 위해 22일부터 내달 6일까지 자체 감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감사 결과를 봐야 판단할 수 있겠지만 이제껏 군이 취한 태도를 보자면 우려부터 앞서는 게 사실이다. 군은 ‘청해부대 사태’ 발생 이후 지금까지 사태 원인과 그 책임을 국방부→해군→청해부대 등 ‘아래로’ 떠넘기는 데 급급한 모습이었다.

집담감염 사태의 1차 원인은 누가 뭐래도 군 당국이 2월8일 출국한 대원 300여명에 대한 백신 접종을 뒤늦게라도 시도하지 않은 탓이다. 그다음 결정적 이유는 코로나19 진단에 적합하지 않은 ‘항체검사키트’를 사용해 검사를 한 것이다. 청해부대의 의무담당 간부는 지난 2일 처음 감기 증상자가 발생하자 잘못된 진단키트를 사용해 “매일매일, 최종적으로는 51명을 검사”(국방위 의원실 관계자)했다. 진단 결과 거듭거듭 ‘음성’이 나오자 코로나19 감염이 아니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빈 틈이 첨단 무기체계를 갖춘 부대를 일거에 무력화키고 말았다.

국방부·합참·해군이 ‘진단키트’ 문제에 얼마나 무지했는지는 사후 대응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겨레>가 18일 ‘초기감염 못 잡는 항체검사, 청해부대 전파 확산시켰다’는 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지적하자, 당시 해군의 1차 해명은 “청해부대가 2월 초 출병할 때 (코로나19의 신속 검사에 적합한 자가검사용) 항원키트가 아직 승인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항체키트를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잘못된 검사의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취지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해명과 달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전문가용 항원키트와 항체키트를 지난해 11월 허가한 상태였다. 해군 공보 담당자가 의도적으로 언론에 거짓 해명을 할 리 없으니, 이는 언론 취재 이전까지도 해군 수뇌부가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해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진단키트 논란이 커지자 국방부와 합참은 19일 ‘항원키트를 사용하라는 공문을 내려 보냈다’고 책임 소재를 해군에 돌렸다. 그러자 해군은 23일 “지난해 말 국방부에서 ‘신속항원검사 활용지침’ 문서를 수령한 뒤 사용지침을 문무대왕함을 포함한 예하 함정에 시달”했지만, “파병 전 격리 및 실무부대 간의 확인 미흡 등으로 적재하지 못한 채 출항했다”는 추가 해명을 내놨다. 책임 소재를 일선 함정에 떠넘긴 것이다.

그동안 군은 변명으로 일관하다가 궁지에 몰리면 시인하고 사과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파병 장병들이 출국한 후라도 왜 백신을 접종을 시도하지 않았냐’는 추궁에 초기엔 ‘응급상황 대처 곤란’과 ‘보관상의 어려움’ 등을 거론하다가 “백신접종 노력에는 부족함이 있었다”(서욱 국방장관 20일 대국민 사과)고 한발 물러났다. 합참 역시 지난해 6월 ‘코로나19 관련 대비지침 및 유형별 대비계획’ 등을 만들어 시달했다고 하지만,국회 국방위 의원실 등을 통해 확인된 바로는 질병관리청과 협의를 거치지 않은 구멍투성이였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해군이 영웅으로 모시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보면 거짓 보고를 하거나 병참 실패를 한 부하들의 목을 잡아 벤 뒤 “마음이 괴롭고 어지러웠다”고 토로하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한다. 벌써 여섯번째 대국민 사과를 한 서욱 장관은 이 어처구니 없는 ‘병참 실패’에 대해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감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까. 작은 빈 틈 하나로 구축함 한척이 무용지물이 되고 마는 무시무시한 현실 앞에서, 군의 치밀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를 당부한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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