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정동 성프란체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라이스 미 국무장관 방한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에 즈음한 한국 시민사회 단체 합동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북핵문제를 제재가 아닌 대화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같은당에서도 방법론은 갈려…“위기수습이 더 중요” 주장도
“자위권”서 “국지전”까지
대선 정계개편 촉진제? 북한 핵실험 이후의 대처방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소속 정당을 떠나 정치인 개개인과 정파들의 이념적 색채도 좀더 분명해졌다. 전문가들은 “북한 핵문제가 정치권의 이념지형을 명확히 하면서 내년 대선을 앞둔 정계개편 과정에서도 핵심 매개고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좌우 이념편차 뚜렷=북한 핵실험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좌우로 편차가 뚜렷하다. 맨 왼쪽으로 민주노동당 자주파(NL)는 북한 핵실험을 ‘북한의 자위권’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노회찬 의원 등 민노당 평등파(PD)는 ‘반핵’에 무게를 둔다. 민노당 내의 이런 시각 차는 결국 핵문제에 대한 특별결의문 채택에 실패하는 것으로 표면화됐다. 북핵 문제가 잠재해온 민노당 내부의 이념적 이질성을 휘저어놓은 것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개별적 의견 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조금씩 생각의 편차가 드러나고 있다. 20일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김근태 의장, 천정배 의원 등과 이들의 개성행을 반대한 의원들 사이에선 상황판단 뿐만 아니라 생각의 뿌리에서도 차이가 엿보인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피에스아이) 참여 확대에 반대를 선언한 의원 77명과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강하게 경고하고 나선 의원 12명의 생각에서도 미묘한 인식차가 묻어난다. ‘온정적 포용정책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선 고건 전 총리와 ‘피에스아이 참여확대 불가피’를 주장하는 민주당은 대북 문제에서 열린우리당보다 몇발짝 오른쪽에 서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견해차가 존재한다. 지도부는 ‘무력 제재를 뺀 모든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대북 정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당내 다수가 여기에 동조한다. 하지만 구체적 방법론에선 다른 견해들이 표출된다. 국회 국방위 소속인 공성진·송영선 의원은 “국지전도 각오해야 한다”고 초강경론을 펴고 있다. 반면, 원희룡 의원은 ‘전쟁 불사론’을 비판하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문제 또한 흑백논리로 따지지 말고 현금 전용을 최소화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정부의 태도와 비슷하다. 원 의원은 피에스아이 참여에 대해서도 “제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지도부와 선을 그었다. ‘헤쳐 모여’ 촉진제?=북핵 문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예상되는 정계개편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핵 문제는 본질적으로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분명한 태도 선택을 강제하면서 편을 갈라주는 측면이 있다”며 “사안의 성격상 내년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의 ‘헤쳐 모여’와 지형 재편을 강제하고 촉진하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에 대한 태도가 정치권의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주면서 정계개편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 연구원은 또 “과거 지역 구도에선 드러나지 않았던 내부의 이념적 편차가 북핵 문제로 표면화할 것”이라며 “북핵 문제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전 총리의 편차는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용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스펙트럼이 정파간 합종연횡 도구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이 포용정책을 지속하려는 세력과 수정하려는 세력, 폐기하려는 세력으로 나뉘겠지만 결국 내년 대선에선 ‘포용정책 폐기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의 구도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고건 전 총리와 민주당이 포용정책 일부 수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결국 포용정책 지속이냐 폐기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석규 황준범 기자 sky@hani.co.kr
보수에서도 ‘정권교체’ 이견
진보에서도 ‘북한 책임론’ 나와
북 핵실험 사태가 일어난 지 열흘째를 넘기면서 양자 대립 구도를 보이던 보수·진보 진영 시민단체들이 내부로부터 조금씩 변화·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 핵실험을 둘러싼 논의가 보수·진보 대결 구도에서 보수 내부, 진보 내부의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양상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보수 진영=보수단체들은 대체로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 등 모든 남북교류 활동을 중단해야 한다는 데 거의 일치된 의견을 보인다. 그러나 북 핵실험의 모든 책임을 노무현 정권에 돌릴 것인지를 놓고서는 단체마다 뚜렷한 의견차이를 보였다.
19일 기독교 인사들과 국민행동본부가 주축인 국가비상대책협의회(상임의장 김상철)는 서울 언론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노무현 정부는 국민 대표성을 상실했다”고 노무현 정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그러나 ‘뉴라이트’ 계열인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서강대 교수)는 “다른 단체들이 지나치게 북핵 문제를 정권교체와 연결시키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정권교체보다 현재 위기를 수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뉴라이트전국연합은 2007년 대선을 통한 정권교체를 요구했고, 선진화국민회의는 정권 퇴진에 대한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핵실험에 대한 대응 수준에서도 단체들마다 대안이 달랐다. 국민행동본부 신혜식 대변인은 “우리도 언제까지 미국만 바라볼 수는 없는 상황인 만큼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독자적으로 핵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뉴라이트전국연합 임헌조 사무처장은 “북한에 핵확산금지조약 복귀를 요구하면서 우리가 핵무장에 나서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다만 1992년 비핵화 선언 때 철거한 미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하는 것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자유주의연대는 남한에 핵무기가 들어오는 것을 분명하게 반대했다.
책임론을 둘러싼 진보 진영 분화=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들 역시 북 핵실험의 책임을 어디에 물을지와 대북 제재의 방향과 수위 등을 두고 미묘한 의견차이를 드러냈다.
환경운동연합, 평화네트워크,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북한의 핵실험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군사적 도발행위라고 비난했다. 환경운동연합 이상훈 정책실장은 “북핵 위기 때마다 일부 단체들은 미국을 먼저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핵실험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다르다”며 북쪽의 책임을 분명히 지적했다.
그러나 이른바 민족해방(NL) 계열이라 할 통일연대 쪽은 핵실험의 책임이 북쪽보다는 미국에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한현수 통일연대 정책위원장은 “상황을 악화시킨 애초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미국 쪽이 정책변화를 취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칙적으로 북에 대한 제재에 반대하며 금강산관광 중단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구속받지도 않기에 더욱 반대한다”며 대북 제재 강화도 반대했다.
그러나 평화네트워크와 참여연대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확대나 금강산관광 중단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의 추가 핵실험이 벌어진다면 계속 포용정책을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태도를 보였다. 핵에 가장 민감한 환경운동 진영에서는 “햇볕정책에 따른 지원이 북의 핵무기 개발에 전용될 우려가 있다면 이를 중단해야 한다”(이상훈 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는 의견까지 내놓고 있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한국 정부가 상황을 한반도를 중심으로 주변지역까지 비핵지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유신재 이재명 기자 ohora@hani.co.kr
대선 정계개편 촉진제? 북한 핵실험 이후의 대처방안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소속 정당을 떠나 정치인 개개인과 정파들의 이념적 색채도 좀더 분명해졌다. 전문가들은 “북한 핵문제가 정치권의 이념지형을 명확히 하면서 내년 대선을 앞둔 정계개편 과정에서도 핵심 매개고리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좌우 이념편차 뚜렷=북한 핵실험에 대한 정치권의 시각은 좌우로 편차가 뚜렷하다. 맨 왼쪽으로 민주노동당 자주파(NL)는 북한 핵실험을 ‘북한의 자위권’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본다. 노회찬 의원 등 민노당 평등파(PD)는 ‘반핵’에 무게를 둔다. 민노당 내의 이런 시각 차는 결국 핵문제에 대한 특별결의문 채택에 실패하는 것으로 표면화됐다. 북핵 문제가 잠재해온 민노당 내부의 이념적 이질성을 휘저어놓은 것이다. 여당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개별적 의견 표명을 자제하고 있지만 조금씩 생각의 편차가 드러나고 있다. 20일 개성공단을 방문하는 김근태 의장, 천정배 의원 등과 이들의 개성행을 반대한 의원들 사이에선 상황판단 뿐만 아니라 생각의 뿌리에서도 차이가 엿보인다.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피에스아이) 참여 확대에 반대를 선언한 의원 77명과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강하게 경고하고 나선 의원 12명의 생각에서도 미묘한 인식차가 묻어난다. ‘온정적 포용정책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선 고건 전 총리와 ‘피에스아이 참여확대 불가피’를 주장하는 민주당은 대북 문제에서 열린우리당보다 몇발짝 오른쪽에 서있다.
한나라당 안에서도 견해차가 존재한다. 지도부는 ‘무력 제재를 뺀 모든 제재에 동참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대북 정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당내 다수가 여기에 동조한다. 하지만 구체적 방법론에선 다른 견해들이 표출된다. 국회 국방위 소속인 공성진·송영선 의원은 “국지전도 각오해야 한다”고 초강경론을 펴고 있다. 반면, 원희룡 의원은 ‘전쟁 불사론’을 비판하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문제 또한 흑백논리로 따지지 말고 현금 전용을 최소화할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현정부의 태도와 비슷하다. 원 의원은 피에스아이 참여에 대해서도 “제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지도부와 선을 그었다. ‘헤쳐 모여’ 촉진제?=북핵 문제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예상되는 정계개편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고원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핵 문제는 본질적으로 ‘이쪽이냐, 저쪽이냐’의 분명한 태도 선택을 강제하면서 편을 갈라주는 측면이 있다”며 “사안의 성격상 내년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의 ‘헤쳐 모여’와 지형 재편을 강제하고 촉진하는 구실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핵에 대한 태도가 정치권의 이념적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주면서 정계개편의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고 연구원은 또 “과거 지역 구도에선 드러나지 않았던 내부의 이념적 편차가 북핵 문제로 표면화할 것”이라며 “북핵 문제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고건 전 총리의 편차는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포용정책을 둘러싼 정치권의 스펙트럼이 정파간 합종연횡 도구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이 포용정책을 지속하려는 세력과 수정하려는 세력, 폐기하려는 세력으로 나뉘겠지만 결국 내년 대선에선 ‘포용정책 폐기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의 구도로 재편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고건 전 총리와 민주당이 포용정책 일부 수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결국 포용정책 지속이냐 폐기냐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임석규 황준범 기자 sky@hani.co.kr
보수에서도 ‘정권교체’ 이견
진보에서도 ‘북한 책임론’ 나와
19일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사옥 앞에서 열린 ‘금강산 안가기 시민행동’ 발족식에 참석한 한 보수단체 회원이 집회도중 펼침막에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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