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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

중국 향하는 나토…한반도에 ‘우크라 전쟁 나비효과’

등록 2023-02-25 10:00수정 2023-02-26 15:01

[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
1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지난 2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지난 20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2월 중순 독일에서 뮌헨안보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중국의 외교 수장인 왕이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평화협상을 중재할 뜻을 밝혔다. 그의 다음 행선지가 모스크바였던 것만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할 수 있는 생산적인 논의의 물꼬를 틀 기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중국의 중재안이 “함정”이 될 수 있다며 일축했다. 오히려 중국이 러시아에 “치명적인 무기”를 제공하려 한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렇다 할 근거 제시는 아직까진 없다.

세계의 시선이 뮌헨으로 모이던 때에,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포-15형’을 쏘아 올렸다. 그러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대북 규탄 의장성명 채택을 추진했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상황 악화의 책임이 미국에도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과거에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냈던 강대국들이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면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균열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왜 종전에 무관심할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부터, 미국이 이 전쟁을 대하는 태도는 우크라이나에는 무기와 장비, 그리고 정보를 제공하고 러시아에는 강력한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불가피하다. 또 침공을 당한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돕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리더십은 여기까지이다. 전쟁을 예방하려는 노력은 물론이고 전쟁을 종식하려는 노력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살펴봐야 하는 까닭이 아닐 수 없다.

전쟁의 필연적인 이유는 아니지만 중요한 배경이 된 것 가운데 하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에 있었다. 미국은 전쟁 발발 직전에도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불허를 확약해달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뿌리쳤다.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대유럽 전략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탈냉전 이후 미국 주류의 우려 사항 가운데 하나는 유럽이 유럽연합(EU)을 기반으로 삼아 다극체제의 일원으로 부상하고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에 있었다.

이에 대한 미국 주류의 선택은 미국이 주도권을 장악한 나토 확대에 맞춰졌다. 군사동맹을 확대하면서 이를 ‘민주주의의 확대’로 포장하려고 했다. 그러자 미국 행정부 내에서조차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왔다. 나토 동진보다 동유럽 및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 유럽연합 가입을 권유하고 기존 유럽연합 회원국들에도 문호를 개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 주류는 나토 동진을 선택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고위 외교관 출신인 제논 워커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 주류의 대다수는 나토를 통한 방식을 선호했다. 왜냐하면 이것이 미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의도와 관계없이 미국은 러-우 전쟁의 전략적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유럽 국가들의 대미 안보 의존도는 더욱 높아졌고, 유럽과 러시아의 관계는 당분간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으며, 미국이 목표로 삼은 러시아의 약화와 고립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중립을 지켰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에 합류하기로 했고, 유럽 전체가 군비 증강의 열기에 휩싸이면서 미국 군수산업체의 수익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전략적 셈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아니,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의 최대 전략적 목표는 중국이 미국을 추월해 세계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좌절시키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은 나토와 미국 주도의 아시아 동맹을 연결하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행정부가 2011년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발표하면서 유럽 주요국들의 기여를 타진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유럽의 주요국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2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해 2월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만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겨냥한 미국의 동진 전략

이러한 풍경은 러-우 전쟁을 계기로 바뀌고 있다. 나토와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 사이의 결속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커트 캠벨 백악관 인도·태평양 조정관은 작년 5월 초에 과거에는 중국을 견제하자는 미국의 요구에 냉담했던 유럽 국가들이 러-우 전쟁을 거치면서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에 고무된 탓인지, 5월 중순에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미국의 목표를 명확히 밝혔다. “유럽과 인도·태평양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전략을 통합·연결하는 것이야말로 바이든 행정부 외교정책의 두드러진 특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5월 하순에 블링컨은 “국제질서에 가장 심각한 장기적인 위협”은 중국이라며 ‘대서양-인도·태평양 동맹 네트워크 구축’의 대상이 중국임을 감추지 않았다.

그 이후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6월 말에 열린 나토 확대 정상회의에 처음으로 태평양의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인 한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정상들이 참석했다. 또 이 회의에선 나토의 새로운 전략 개념에 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체계적 도전”에 대한 대응도 명시했다. “중국의 야심과 강압적인 정책이 나토의 이익·안보·가치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전략 개념은 나토의 최상위 전략 지침에 해당된다는 점에서 이는 나토의 동진이 중국을 향해서도 뻗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토에서 전략적 기반을 다진 바이든 행정부는 시선을 아시아로 돌려 한·미·일 3자 결속을 도모했다. 11월 중순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열린 정상회의를 통해 북한·중국·러시아를 상대로 군사 분야를 비롯한 한·미·일의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또 바이든 행정부는 반격 능력(적기지 공격 능력)과 방위비 대폭 인상을 골자로 한 일본의 새로운 국가안보전략에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영국과 일본의 움직임도 미국의 전략적 그림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영국과 일본은 각각 대서양과 태평양에서 미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다. 그런데 이들 나라가 1월 상호 간에 군대 파견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원활화 협정’(RAA)을 체결했다.

일본이 동맹국인 미국을 제외하고 원활화 협정을 체결한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두번째이다. 그런데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의 동맹국일 뿐만 아니라 4개국 안보협의체인 쿼드(Quad) 회원국이자 미·영·오스트레일리아의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 당사국이다. 미국의 공식적인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그 정점에는 미국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에 고무된 탓인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 국정연설에서 “태평양과 대서양 파트너 사이에 다리가 형성되고 있고, 미국에 맞서는 이들은 그들이 얼마나 잘못됐는지를 배우고 있다”고 역설했다. 지금까지 따로 존재했던 나토와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들이 러-우 전쟁을 계기로 결속하기 시작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잔뜩 담겨 있는 발언이다.

‘한·미·일 대 북·중·러’마저 넘어서나

이러한 미국 주도의 태평양-대서양 동맹 네트워크의 부상은 한반도 안팎의 지정학적 변동에도 심대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익숙한 문법인 ‘한·미·일 대 북·중·러’를 넘어선 지정학적 그림이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이런 것이다. 대만해협에서 양안 간의 무력 충돌이 발생해 미국이 여기에 개입하면, 최대 변수 가운데 하나는 북한의 선택이 될 것이다. 일각에서 거론하는 것처럼 북한이 남침을 감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더라도 군사 태세를 크게 강화하면서 미사일 발사 연습과 같은 긴장 조성 행위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럴 경우 미국이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양안 전쟁에 투입하기가 곤란해질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2021년 5월 인준청문회에서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투입 옵션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의 공백을 “한국군과 유엔사령부”가 메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유엔사 후방기지가 있는 일본이 유엔사의 주요 회원국인 오스트레일리아 및 영국과 원활화 협정을 맺은 것은 함축하는 바가 크다.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출동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와 영국이 군사력을 일본에 파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트럼프 행정부와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 미국이 동맹·우방국들을 향해 요구하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이익에 복무하라는 것이다. 이는 냉전시대의 양극체제나 탈냉전 이후 10여년간 지속됐던 단극체제와도 구별된다. 과거의 미국이 국제 공공재를 제공하고 동맹·우방국과 더불어 자국의 이익을 도모했다면, 오늘날의 미국은 철저하게 자국 이기주의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중산층의 재건”을 외교정책의 핵심목표로 내세운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가 북·중·러에 대한 반감에 경도된 나머지 달라지고 있는 미국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할 시점이다.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평화다’라는 믿음으로 평화 활동과 연구를 해오고 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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