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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개혁’ 팔걷은 ‘개혁의딸’의 정치반란

등록 2022-04-14 04:59수정 2022-04-14 11:51

정치BAR_조윤영의 알·쓸·정

“민생 안정과 안전한 미래를 위해 검찰·언론개혁이 필요합니다!”

지난 11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인근에서 열린 ‘검찰·언론 정상화 당론채택 촉구 게릴라 촛불 개혁 문화제’. 인터넷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패러디 사진이나 짧은 영상) ‘슉 슈슉 돌하르방’(칼을 들고 역동적인 자세를 취한 난타 돌하르방) 복장을 한 ㅇ(28)씨가 “검찰개혁”이라고 적은 은박지 칼을 휘두르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날은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수사권-기소권 분리를 4월 국회 안에 처리할지 여부를 결정할 정책 의원총회를 하루 앞둔 날이었습니다. 흰곰, 파란 공룡, 흰 토끼 등의 복장을 한 시민 등 300여명은 민주당을 향해 반드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해내라며 노래하고 춤을 췄습니다. 직장인 ㅇ씨가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이런 집회에 참여한 것도 이번이 세번째입니다. 유쾌한 목소리로 자신을 “개딸”이라고 <한겨레>에 소개한 ㅇ씨는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과 박지현 비상대책위원장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습니다.

 대선 직후 입당해 ‘이재명·박지현 지킴이’ 자처

3월9일 대선이 끝난 이후, ㅇ씨처럼 자신들을 ‘개딸’이라고 불리는 2030 여성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개딸’은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아버지역 배우가 ‘성질머리가 대단한 딸’을 애정 섞어 부르던 말입니다. 대선 패배 뒤 아들만 둘인 이재명 상임고문이 2006년 올렸던 ‘딸에게 아빠가 필요한 100가지 이유’라는 글이 뒤늦게 2030 여성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이들이 우스갯소리처럼 ‘제가 딸이 돼드릴게요’라고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게 계기가 되어, 이제 ‘개딸’은 이재명을 지지하는 2030 여성 지지자를 가리키는 정치 신조어가 됐습니다. 특히 이들이 최근 민주당에 대거 권리당원으로 입당해 이 상임고문에게 무게를 실어 주며 정치적 목소리를 내며 ‘개혁의 딸’로 그 의미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들을 지칭하는 언어가 없었다”며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ㅇ씨의 말마따나, 개딸들은 지금 ‘이재명·박지현 지킴이’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0.73%포인트 차이로 대선에서 석패한 이 상임고문 개인에 대한 동정심과 윤석열 정부에 대한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게 대체적 해석입니다.

사실 2030 여성들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 민주당 인사들의 성비위 문제 등으로 민주당에 한동안 등을 돌린 듯 했습니다. 하지만 대선 당시 윤석열 당선자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노골적으로 ‘이대남’(20대 남성) 표심을 공략하며, ‘여성가족부 폐지’ 등의 공약을 내걸고 성별 갈라치기에 나서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이 상임고문에게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텔레그램 n번방’을 추적해온 ‘불꽃’의 활동가 출신 박 위원장이 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하면서, 이 상임고문 지지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됐습니다. 박 위원장은 ‘개딸’들 사이에서 ‘불꽃대장’으로 불립니다. 민주당 관계자는 “대선 마지막까지 2030세대 여성들을 설득하려 해도 잘 안 됐는데 박지현씨가 합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형수 욕설 논란’ 등도 여성들이 거부감을 느끼던 지점이었지만 대선 일주일 전부터 커뮤니티 등에서 관련 판결문을 돌려보며 이 상임고문을 오해했다는 흐름이 대선 이후까지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상임고문의 활발한 ‘에스엔에스(SNS) 소통’도 이들의 결집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최근 팬카페 회원들이 투표를 통해 이 상임고문이 카페 대표격인 이장직을 맡아야 한다고 뜻을 모으자, 이 상임고문은 지난 2일 “이장 한다잔아”라고 직접 글을 남겼습니다. ‘~잖아’를 ‘~잔아’라고 맞춤법을 틀리게 표현하는 ‘자나체’까지 써가며 2030 여성들에게 친근감을 표현한 것이죠. 이재명계 한 의원은 “(이 상임고문은) 대선 때도 국민과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고, 낙선 다음 날에도 국민에게 ‘미안하다’, ‘감사하다’고 답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상임고문의 국민과 편한 소통, 진심 어린 소통”에 2030 여성들이 호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주당은 ‘소속사’…이재명은 ‘재덩이’·‘잼칠라’·‘아빠’

개딸들은 대선 이후 비공식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 등 온라인 커뮤니티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 카페의 회원 수는 지난 13일 기준 21만여명을 돌파했습니다. 대선 직후인 지난달 10일 팬카페를 연 지 한 달 여 만입니다. ‘내가 이재명을 지지하는 이유’ 3가지를 밝히고, ‘방문 횟수 5회, 게시글 1회 작성, 댓글 10개’의 기준을 다 채워야만 자유게시판을 볼 수 있는 ‘마을주민’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들은 이 마을에서 이 상임고문을 ‘재덩이’(재명복덕이), ‘잼칠라’(이 상임고문과 그를 닮은 동물 친칠라의 합성어), ‘이잼’(이재명의 줄임말), ‘아빠’라고 부르며, 이 상임고문과 민주당에 관련된 기사와 영상, 자료, 밈 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민주당은 ‘소속사’로 불립니다. 그렇다면 이 상임고문은 이들에게 ‘아이돌 스타’ 같은 존재일까요? 민주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아이돌 팬덤 문화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디지털 네이티브 2030 세대가 자신들이 이해하기 편한 방식으로 정치를 유쾌하게 해석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노사모’·‘문파’와도 다른 ‘개딸’

개딸 가운데 일부는 민주당에 권리당원으로 가입하며 ‘개혁’을 압박하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대선 다음날인 3월10~18일 사이, 민주당에 새로 입당한 사람은 모두 13만1462명. 이 가운데 여성이 8만4159명입니다. 18~30살까지 여성으로만 한정해도, 28%에 해당하는 3만7635명이나 됩니다.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선거 이후 2030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 의미와 과제’ 토론회는 이런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온라인 댓글로 토론에 참여한 2030세대 여성들은 “우리는 집토끼가 아니라 호랑이다”, “2030 여성을 관람객이 아닌 경기장에 내려온 플레이어로 인정하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들을 대신해 ‘여성혐오’와 싸워줄 카드로 이 상임고문과 박 위원장을 ‘선택’했다는 선언인 셈입니다. 바꿔 말하면, ‘무조건적인 지지는 없다’, 원하는 개혁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팬 카페 탈퇴하듯 언제든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를 두고 “열린 멤버십”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들의 이런 모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특정 정치인을 중심으로 뭉쳤다는 점에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나 ‘문파’(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을 일컫는 말)와 비슷하지만,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았던 불특정 다수의 2030세대 여성들이 적극적 정치 참여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얘깁니다. 〈문재인 정치팬덤의 복합적 성격〉이란 논문을 쓰기도 했던 오현철 전북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거듭된 낙선을 보고 자발적으로 모였다는 점에서 ‘노사모’와도 유사하지만, 개딸은 개인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넘어 민주당에 입당해 정치 세력화와 정당정치를 지향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지적합니다. 오 교수는 이 점에 주목하며 “문재인 대통령 개인에게 감성적으로 매몰된 문재인 팬덤과는 달리 (개딸은) 정치인 개인에 대한 충성을 넘어 민주당의 정책 노선 변화와 체질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토론회에서 2030 여성들의 민주당 입당 러시를 20세기 초 영국과 미국에서 벌어진 여성 참정권 운동과 비교하며 “대선에서 차별과 혐오를 넘어 세상을 바꾸자는 목소리를 보여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죠.

 ‘문자 폭탄’ 던지는 개딸들…‘비판적 거리’ 확보할 수 있을까

개딸들이 현재 집중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슈는 ‘검찰 개혁’입니다. 개딸들의 주요 온라인 활동 본거지인 ‘재명이네 마을’에선 최근 검찰개혁 관련 현안이나 6·1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된 민주당의 상황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질 ‘퇴행’을 막기 위해선 이 상임고문을 지켜야 하고, 그러려면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논리 전개에 따른 것입니다. 이들은 ㅇ씨처럼 검찰개혁 촉구 집회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검찰개혁 찬반 기사에 ‘댓글달기’를 서로 독려하며 여론전에 나서기도 합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검찰 개혁에 대한 ‘신중론’ ‘역풍’ ‘속도 조절론’은 꺼내기 힘든 분위기로 흐르고 있다는 점입니다. “검찰 정상화 의지가 안 보이는 의원”이라며 명단과 전화번호를 정리해 공개하며, 이들에게 찬성을 촉구하는 문자와 팩스 등을 돌리고 있는 게 대표적 현상입니다. ‘문자 폭탄’ 공격에 우상호 의원 등 몇몇 의원들은 “저는 검언 정상화에 찬성한다”며 “부정확한 명단으로 의도치 않은 비난을 당하고 있어 우리 당 의원이 많이 힘들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소영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11일 “우리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명분과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국민들이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일 때에만 실제 사회변화와 제도안착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얘기했다가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이 상임고문을 지킨다’는 명분 강조가 지나쳐, 이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은 무조건 반대해 민주주의의 소통을 막는 맹목적 ‘팬덤’ 정치로 흐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오 교수는 이와 관련 “(이미 셀럽이나 다름 없는) 이 상임고문과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할 때, (개딸 현상은 비로소) 정당정치와 민주주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극렬 지지자가 될 것이냐, 진정한 정치 참여자가 될 것이냐 개딸은 이미 시험대 위에 섰습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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