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지난 25일 저녁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사용자 엄정 처벌과 조속한 대법원 판결을 요구하며 야간문화제를 하려던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통투쟁’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강제해산하고 연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6~17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의 1박2일 서울 도심 상경집회 이후 국민의힘과 정부는 연일 강경 입장을 밝히며 노조 때리기에 나섰다. 31일 열리는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도심 집회를 앞두고 그 강도는 최고조로 치달았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특단의 강력한 대책을 취해야”(18일) → 윤석열 대통령 “우리 정부는 그 어떤 불법도 방치, 외면하거나 용납하지 않을 것”(23일)→ 당정 “불법 전력 있는 단체와 출퇴근 시간대 시위 제한 검토”(24일)→경찰, 6년 만에 집회 강제 해산 훈련(25일)→경찰, 대법원 앞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문화제·노숙 농성 원천 봉쇄, 참가자 3명 체포(25일)→윤희근 경찰청장 “필요한 경우 캡사이신 분사기 사용”(30일)
하지만 국민의힘은 지난 정권에서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보수단체의 ‘집회·시위의 자유’를 강조했고, 1년 전 대통령실은 “집회의 자유는 기본권”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여당 시절’에는 정권을 비판하는 집회와 시위에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다. 개별 집회의 양상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순 있다. 그러나 ‘내 편’일 때만 기본권을 소중히 대하는 정치권의 이율배반적인 태도가 계속되면서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흔들리고 있다.
25일 서울 중구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에서 경찰 기동대원들이 불법 집회·시위 해산과 불법 행위자 검거 훈련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정규직 이제그만 공통투쟁’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불법파견 사용자 엄정 처벌과 조속한 대법원 판결을 요구하면 야간문화제를 하려고 하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1년 전에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권”
지난해 6월7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집회·결사의 자유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 중 기본권”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난해 5월 이후 보수단체가 양산 평산마을 사저 앞에서 확성기 등을 이용해 ‘욕설 시위’를 벌인 것에 대한 입장이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자유를 임의대로 억누를 수 없다”며 “집회 과정에 범법이 있다면 당연히 법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라고 했다. 집회 과정상 일부 범법 행위가 있더라도 ‘기본권’을 침해할 순 없다는 취지다.
윤 대통령도 같은 날 오전 대통령실 출근길에 ‘문 전 대통령 사저 앞 보수단체 시위를 어떻게 보느냐’는 물음에 “대통령 집무실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법에 따라서 (해결)되지 않겠나”라고 했다.
지난해 7월17일 문재인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단체 회원들이 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에 모여 문 전 대통령 수사, 전직 대통령 예우박탈 등을 주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한 반대단체 회원이 사저 앞에서 확성기를 사용한 문 전 대통령 비판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 자택-집무실 두고는 여야는 ‘같은 편’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문 전 대통령 자택 앞 시위를 막기 위해 전직 대통령 사저를 집회 금지장소에 포함시키는
집시법 개정안을 연이어 발의했다.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집시법 개정은 내로남불”이라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당은 100m 이내 집회·시위 금지 대상에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자택을 포함하는 방안에 공감대를 이루고 법개정을 추진했다. 이에 참여연대는 “거대 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전⋅현직 대통령 지키기라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입법권을 남용한 것으로, 정치적 야합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9년 10월3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원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헌정유린 중단과 위선자 조국 파면 촉구 광화문 규탄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각목집회’는 두둔한 자유한국당
특히 지난 정권에서 국민의힘인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집회의 자유’에 목소리를 크게 내왔다. 2019년 10월3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대규모 보수단체 집회에서 참가자 46명이 각목을 경찰관에 휘둘러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체포되며 논란이 일었다. 자유한국당은 이튿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경찰의 대응을 비판했다.
이날 회의록을 보면 홍문표 자유한국당 의원은
“어제 광화문 집회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있었는데 대체적으로 평화적인 집회”였다며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에게 “그게(그 집회가) 문제가 되고 있냐”고 따져 물었다. 현재 경남도지사인 박완수 한국당 의원도
“국민이 헌법에 의해서 가지고 있는 집회·시위에 관한 자유(가 있다). 어제 집회가 그렇게 폭력적이었냐, 그렇게 불법적이었냐”고 민 청장을 질타했다. “일부 폭력 행위가 있었다”는 민 청장의 답변에 박 의원은 “이걸 폭력으로, 그냥 동원된 인력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당시 민주당은 ‘내란죄’까지 언급하며 경찰에 강력 대응을 촉구했다. 김한정 민주당 의원은 “청와대로 진격하고 경찰을 무력화하고 폭력을 행사하고 선동을 해도 되는, 이런 극도의 사회문란 유도행위를 방치할 경우 국민들이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겠냐”며 집회 주최측에 대한 고발장을 민 청장에게 제출하기도 했다.
2019년 개천절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서 불법·폭력 행위를 주도한 혐의를 받는 전광훈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목사가 구속영장이 기각된 2020년 1월2일 저녁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며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1월 극우 인사인 전광훈 목사가 광화문 집회에서 폭력 행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 위기에 처했을 때도 한국당은 두 팔을 걷어붙였다. 황교안 당시 한국당 대표는 전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에 대해 “종교집회와 관련한 구속 시도는 종교 탄압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신중해야 한다”며 “종교의 자유, 집회와 시위의 자유는 철저히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때 서울중앙지법은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전 목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왜 집회가 늘어나는지 반성부터”
참여연대 지난 24일 정부와 여당의 집회 제한 검토 방침에 대해 성명을 내어 “왜 정부에 반대하는 집회시위가 늘어나는지는 반성하지 않고, 일어나지도 않은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집회 자체를 막겠다고 나서는 것은 위헌이자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며 “사실상 현 정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공권력을 남용해 비판자를 처벌하겠다는 불통의 선언이다”고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