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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치일반

한·중 관계 ‘메시지’ 내려 했지만…정상회담은 끝내 불발

등록 2023-11-19 20:21수정 2023-11-20 02:48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한일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에서 열린 한일 스타트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연합뉴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APEC) 정상회의 때 기대를 모았던 한-중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이 기간 미국과 일본 정상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양국 현안 조율에 나선 것과는 비교됐다. 중국과는 거리를 두고 한·미·일 공조에 치중했던 한국 외교가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무게가 실린다.

대통령실은 한-중 정상회담이 불발된 데 대해 양국 정상의 일정이 빠듯해 조율이 어려운 상황이라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9일 “2박3일간 아펙뿐만 아니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정상회의 등 다자 행사 일정이 촘촘해 기본적으로 양자 회담을 할 시간이 모자랐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아펙 정상회의 1세션 전 3~4분 남짓 대화를 나눴을 뿐이다. 마지막 한-중 정상회담은 지난해 11월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였다.

대통령실은 미·중, 일·중은 꼭 해결해야 할 현안이 있어서 양국 정상회담이 필요했다고 본다. 미국과 중국 정상은 4시간 동안 만나 “디커플링(탈동조화)은 없을 것”이라며 군사 분야 소통 채널을 복원하는 등 긴장을 누그러뜨렸다. 시 주석은 일본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도 1시간 넘는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산 수산물 수입 금지 규제 등 현안을 논의하며 고위급 경제 대화를 시작하는 등 소통 채널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중국 외교부 발표를 보면, 시 주석은 15일(현지시각)부터 미국과 일본, 멕시코, 페루, 피지, 브루나이 등 최소 6개국 지도자와 만나 정상회담을 했다.

한국으로선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는 가운데 아펙 기간 한-중 정상회담을 통해 대중 관계가 관리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중국학과 교수는 “한-중 관계 정상화까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일본은 사전에 고위급이 중국을 방문하는 등 정상회담 단계에 이르기까지 작업을 해왔는데, 한국은 그런 과정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우리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 미국의 가치외교 프레임을 적극 수용했지만, 이번 (한중회담) 불발은 그런 외교정책을 표방한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일본도 중국과 대화를 해 왔고, 미국도 대중 관계 관리에 나섰는데, 한국은 중국에 실익이 있는 제안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원하는 (한중) 관계 설정에 호응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처지에선 독자적 외교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을 따로 만날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국이 미국과 강하게 밀착한 상황 속에서 중국과 공유할 어젠다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아펙 정상회의 기간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미·일 정상과 만나 한·미·일 삼각 결속을 강조하고, 기시다 일본 총리와는 양자 정상회담을 포함해 2차례 만났다.

전문가들은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과 뒤이은 3국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한-중 관계 재설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외교장관 회담은 이달 26일 부산에서 개최될 가능성이 크고, 여기서 3국 정상회담 개최 관련 논의도 이뤄질 예정이다. 박승찬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는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을 전환점 삼아 현실 가능성 있는 어젠다를 만들어내야 한다. 공급망 부분과 관련해 양국 간 체계를 만들고 고위급 만남을 정례화하는 등 실리적 접근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분리하고, 경쟁과 협력의 영역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했다.

3국 정상회담이 열리면 중국은 리창 총리가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만 교수는 “중국은 최고 지도자의 의지를 가장 중시해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을 통한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며 “3국 정상회담을 하더라도 한-중 관계 경색 국면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난 9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방문한 윤 대통령이 리창 총리를 만났고.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에서 한덕수 총리가 시 주석과 대화했기 때문에 양국 간 긴박한 현안은 해소된 상태”라며 “이번 아펙 기간에도 한·중 정상이 조우해서 덕담을 나누면서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아펙 정상회의에 참석한 다음 18일 귀국했다가 이틀 만인 20일 영국 국빈방문을 위해 다시 출국한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배지현 기자 beep@hani.co.kr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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