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에 29일 “엑스포 유치를 총지휘하고 책임을 진 대통령으로서 부산 시민을 비롯한 국민 여러분에게 실망시켜 드린 것에 대해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이 모든 것은 전부 저의 부족이라고 생각해달라”고도 했다. 하지만 119표(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대 29표(부산)라는 큰 격차의 탈락을 두고, 정부의 허술한 외교·정보 역량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정오께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2030 엑스포 관련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발표하고, “부산 시민뿐만 아니라 우리 전 국민의 열망을 담아서 민관 합동으로 범정부적으로 2030년 엑스포 부산 유치를 추진했습니다만 실패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새벽 1시22분께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 투표 결과 부산이 결선투표에도 가지 못하고 리야드에 밀려 탈락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10시간여 만에 ‘신속 사과’한 것이다.
이날 국제박람회기구 총회 투표에서 리야드는 부산을 90표 차로 제치고 1차 투표에서 개최지로 확정됐다. 3위 이탈리아 로마는 17표에 그쳤다. ‘리야드와 결선까지 가면 역전도 가능하다’던 정부 쪽 설명과 거리 먼 격차다. 과도하게 낙관적인 결과를 예상했던 정부의 정보력과 외교력이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도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저 역시도 96개국 정상과 150여차례 만났고, 수십개국 정상들과는 직접 전화통화도 했다”며 “그럼에도 저희들이 민관에서 접촉하면서 느꼈던 입장에 대한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잘 지휘하고 유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대통령인 저의 부족의 소치”라고 거듭 사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2030 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애초 ‘오일머니’를 앞세운 사우디아라비아의 물량 공세에 견줘 한국의 자본력이 부족하고, 투표 1년4개월 전인 지난해 7월에야 국무총리실 산하 유치위원회가 꾸려지는 등 준비가 늦었다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 프레젠테이션(PT) 주자로 직접 나서면서 기대감을 키웠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월 인도네시아(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인도(주요 20개국 정상회의)·미국(유엔 총회)을 잇달아 찾아 60여차례의 양자 회담을 열었다. 당시 대통령실 관계자는 “한달 안에 가장 많은 정상회담을 연 대통령으로 기네스북에 신청해볼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달에도 미국(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영국(국빈방문)·프랑스(BIE 행사)를 방문하면서 유치전에 몰두했다. 윤 대통령이 ‘최고 사령관’을 자임하면서 엑스포 유치는 국가 최대 과제로 격상됐고, 실패 시 윤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도 커졌다.
투입된 예산과 노력도 막대했다. 정부는 올해 예산 중 엑스포 유치를 위한 지지 교섭 활동, 해외협력 사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3228억원을 배정했다. 지난해(2516억원)보다 28.3% 증액된 것이었다. 윤 대통령과 한덕수 총리 등 국무위원, 민간유치위원장인 최태원 에스케이(SK) 회장 등 기업 관계자들이 유치위원회가 만들어진 뒤 509일간 이동한 거리가 1989만1579㎞로 지구 495바퀴라고 국무총리실이 밝혔다. 정부는 막판까지도 ‘대역전’ 기대감을 내비쳤으나 결과적으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희망고문’으로 드러났다. 민관 합동 정보·외교 역량이 제대로 작동한 것인지 의구심이 새어 나오는 이유다.
여권 관계자는 한겨레에 “회원국을 일상적으로 상대하는 외교부는 투표 결과를 보수적으로 예측한 반면, 엑스포 유치만을 위해 꾸려진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실의 보고는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안다”며 냉정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사는 “왜 이렇게 기대감을 많이 높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재외공관이 신경망처럼 있는 외교부의 판세 분석을 대통령실이 조금 더 믿고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엑스포 유치를 이유로 잦은 순방길에 올랐던 윤 대통령의 외교 행보를 총체적으로 문제 삼았다. 한·미·일 밀착에만 올인한 나머지, 1국가 1표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에 뛰어들면서도 큰 그림을 보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에스엔에스(SNS)에 “상황 예측을 전혀 못 했다면 무능의 극치”라며 “내실은 없는 기네스북감 해외 순방 자랑의 참담한 결과”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김두관 의원은 “현실에는 눈을 감고 ‘벌거벗은 임금님’ 귀에 달콤한 정보만 올라가고 있다. 현재의 외교정책으로 국제적 관계를 풀 수 없다”고 했다.
반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번 유치전에서 체득한 외교적 경험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역할을 해나가는 데에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썼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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