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이 29일 전남 목포시 평화광장에서 한 어린이의 손을 잡은 채 활짝 웃고 있다. 8년 만에 목포를 찾은 그는 전날 목포의 전남지사 관사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목포 시내 곳곳을 둘러봤다. 목포/연합뉴스
“미, 월남·이라크 참전 한국에 왜 은혜 모른다 하나”
“북, 핵 포기-미, 안전보장을”…정치 불개입 강조도
“북, 핵 포기-미, 안전보장을”…정치 불개입 강조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8일 고향인 목포를 찾았다. 대통령 취임 직후인 1998년 8월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식 참석차 목포를 방문한 지 8년 만이다. 이날 오후의 목포역엔 3천여명의 시민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몰려 들었다. 고속열차를 타고 온 김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씨, 아들 김홍일씨와 함께 목포역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시민들은 ‘고향의 봄’을 합창했다. 자리에 앉은 채로 연설을 시작한 김 전 대통령이 “4번의 죽을 고비를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우리 국민과 고향 여러분의 성원과 격려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시하자, 중년의 여성 청중 몇몇은 눈물을 훔쳤다. 여전히 호남 민심에서 김 전 대통령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주는 듯했다.
초반엔 목이 약간 잠긴 듯 목소리에 힘이 없었지만,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면서 그는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는 “피에스아이(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를 한반도 주변에서 실시해서는 안된다. 무력 대치와 전쟁으로 이어지고 수백만이 죽을 수도 있는 만큼 정부는 피에스아이 참여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철저히 검증을 받아야 한다. 미국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특히 “미국의 도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소련을 ‘악마의 제국’이라고 부르면서도 대화했다. 닉슨도 중국과의 대화를 통해 개혁·개방을 이끌어냈다. 베트남과 쿠바에 대한 억압과 봉쇄는 다 실패로 끝났다. 대화를 통해서만 개혁과 개방에 성공한 만큼, 미국은 그 교훈을 거울 삼아 북한과 대화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5분간의 연설시간 대부분을 북핵 문제에 할애했지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도 두 번이나 했다. 그 대신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 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정치를 빼고는 무슨 일이든 하겠다. 한반도의 화해, 협력, 평화적 통일에 헌신하겠다”고 말했다. 연설이 끝나자 청중들은 행사 진행자의 요청으로 ‘목포의 눈물’을 불렀고, 김 전 대통령도 2절까지 따라 불렀다.
김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하의도 주민과 친인척들, 전남도내 시장·도의원 등 120여명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그는 최근의 한반도 정세를 얘기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최근 방한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측근인 앤드류 카드 전 백악관 비서실장과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일화를 소개했다. “내가 아미티지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이 6·25 참전한 미국의 은혜를 모른다고 (일부 미국민들이) 얘기하는 데 우리가 왜 은혜를 모르냐. 월남전에 참전해 5천명이 죽고 1만명이 다쳤다. 이라크에 보낸 군인 수가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우리가 많다. 그런 우리에게 은혜를 모른다고 하면, 우리를 만만하게 보는 거냐. 이렇게 얘기했더니 아미티지도 ‘은혜 모른다고 하는 건 잘못이다’라고 인정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금의 부시 대통령에게도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얘기를 했다. 미국사람을 상대로 그렇게 설득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목포의 전남도지사 관사에서 1박한 김 전 대통령은 29일 오전 전남도청을 방문해 방명록에 ‘무호남 무국가(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라고 한자로 적었지만, 약 5분 동안 전남도의 업무보고를 받은 뒤 방명록을 다시 펼쳐 ‘이충무공 왈’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말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말을 인용했다는 뜻을 표시한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이어 차량을 이용해 목포 시내를 둘러보고, 평화공원에 내려서 바다 구경을 했다. 목포해양대 주변 레스토랑에서는 커피를 한 잔 마시기도 했다. 그가 내리는 곳마다 얼굴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휴대전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았다. 여전히 그의 인기는 높았다. 목포/ <한겨레>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아래는 김 전대통령 특유의 유머를 섞어 전달한 28일 저녁 연설 내용 전문이다.
아래는 김 전대통령 특유의 유머를 섞어 전달한 28일 저녁 연설 내용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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