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여성 사생활 고려해달라”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으로 선임된 유영하 변호사가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 맨 마지막에 한 말입니다. 변호인의 이 발언은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고 평가될 만큼 ‘악수’였습니다. 하지만 이 발언은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 아니었습니다. 준비해 온 기자회견문에도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호인의 이 발언은,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 주사제를 대리 처방받았다는 의혹’이 보도되면서 박 대통령의 개인 의료기록이 마구 공개되는 것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을 전달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지금 언론에서 보도되는 각종 의혹들이 단순히 박 대통령의 사생활 엿보기일까요? 최씨의 박 대통령 주사제 대리처방을 둘러싼 의혹을 정리했습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지 8시간
■ 의혹의 시작은 최순실 단골 성형외과 특혜
문화·체육계에서 시작된 최순실 게이트가 의료계로 확산된 건 이달 8일부터 입니다. 최순실 씨의 단골로 알려진 서울 강남의 병원 ‘김영재 의원’이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보도된 겁니다. 이 병원의 김영재 원장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임에도 지난 7월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외래교수로 위촉(‘최순실 특혜’ 의혹 성형외과 원장, 전문의 자격도 없어)됐습니다. 게다가 김 원장이 박 대통령의 국외순방에도 수차례 동행했다고 합니다. 처남과 운영하는 화장품 업체는 서울 시내 유명 면세점에 잇달아 입점했습니다. 이 회사의 화장품은 올해 초 청와대 설날 선물로 납품되기도 했습니다.
이 병원에 대한 특혜는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 과정과 유사합니다. 두 재단의 모금에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등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조원동 경제수석(“청와대 경제수석 나서 최순실씨 단골 성형외과 지원”)이 등장합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2014년 2월 청와대 조원동 당시 경제수석은 기업들의 국외진출을 돕는 컨설팅업체 대표에게 전화를 해 “실을 이용해 피부시술을 하는 뛰어난 병원과 회사가 있는데 해외 진출을 도와주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병원이 바로 최순실씨 모녀가 드나들던 김영재 의원입니다. 하지만 컨설팅 업체가 병원에 가보니, 국외진출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업체의 국외진출은 무산됐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뒤 조원동 수석은 교체됐습니다.
조원동 전 수석의 부인은 지난 10일 <한국일보>와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남편이 이 병원의 중동 진출을 돕기 위해 컨설팅 회사를 연결시켜줬다”고 밝혔습니다. 조 전 수석은 지인들에게 “(업체의 국외진출 실패가) 내 인사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답니다.
■ 최순실, 또 다른 단골병원 ‘차움의원’도 특혜 의혹
최순실씨 단골 성형외과인 김영재 의원에 이어 10일에는 또 다른 병원이 특혜의 중심으로 떠오릅니다. 바로 차움의원입니다. 최씨와 최씨의 언니 최순득, 딸 정유라, 조카 장시호, 전 남편 정윤회씨도 모두 이 병원의 회원입니다. 회원권이 1억500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병원입니다. 이 병원은 차병원그룹 계열의 병원으로, 일반진료도 하지만 주로 ‘헬스케어’를 전담하는 병원이라고 합니다. 병원도 ‘안티에이징’, 즉 노화방지센터를 운영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차움의원의 모병원인 차병원이 현 정부들어 각종 사업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차병원은 연구중심병원으로 선정돼 192억5000만원의 국고 지원을 받게됐고, 지난 5월에는 줄기세포 연구 관련 조건부 승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줄기세포 연구는 황우석 교수 사태 이후 7년 동안 중단됐던 것으로, 연구 승인 역시 최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겁니다.
보건복지부는 “192억원의 국고지원과 차병원의 줄기세포 연구 조건부 승인은 통상적인 절차에 의해 진행된 것으로 최순실 특혜와 관련이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최씨가 연관된 사업들이 대부분 비정상적이었던 만큼, 복지부의 해명에도 의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 ‘차움의원’, 최순실씨 통해 박 대통령 주사제 대리처방
특혜보다 더 큰 문제는 최씨가 ‘차움의원’에서 박 대통령의 주사제를 대신 타갔다는 것입니다. <제이티비씨(JTBC)>는 병원 내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주사제까지 대신 타갔다”고 보도(“최순실, 박 대통령 주사제 대리 처방 의혹”) 했습니다. 2012년 대선 준비 과정에서 처음 차움의원에서 진료를 받았고, 취임 뒤에는 최씨가 대리 처방을 받아갔다는 겁니다. 처방은 당시 차움병원에서 최씨를 전담했던 김상만 현 녹십자 아이메드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이 했습니다.
차움의원 쪽은 “대리처방은 절차상이나 법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라고 즉각 부인했습니다. 의료법 제17조 1항을 보면, 의사는 환자를 직접 진찰해야 합니다. 환자가 거동이 불편하거나 같은 질병에 대해 같은 처방을 낼 때만 가족에 한해 처방전을 대리로 받을 수 있습니다. 불법처방을 한 의사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 ‘세월호 7시간’ 의혹 다시 불붙인 대리 처방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지금요.” 이 말 기억하시지요? 박 대통령은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사고 접수 8시간 반, 구조 지시 7시간 만에 중앙재난안전본부에 나타났는데요. 7시간 만에 나타난 박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사고 이후 제대로 보고를 받았다면,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이 같은 발언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지적이 일었습니다. 동시에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냐 의혹이 증폭됐습니다. 7시간의 행적은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최씨의 박 대통령 주사제 대리처방 의혹은 세월호 당시 박 대통령의 ‘7시간’ 의혹에 불을 붙였습니다. 박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수면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맞고 성형시술을 받은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최씨의 주치의 김상만 원장은 대리처방과 박 대통령 프로포폴 투약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그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은 약보다 주사를 선호했다. 각종 영양주사를 청와대를 통해 구입해 놔줬을 뿐 대리처방은 말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박 대통령은 마취에 대한 두려움이 있기 때문에 세월호 사고 당일 프로포폴을 맞았다는 일각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겨레> 인터뷰 내용입니다.
[단독] 최순실 담당의사 “매달 청와대서 대통령 영양주사 놨을뿐”
그는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을 위해 주사제를 대리로 처방받아갔다’는 의혹에 대해 “말이 안 된다. 대통령이 밖으로 못 나오니까 내가 필요할 때마다 청와대 의무실에 주문을 넣어두면 의무실에서 다 구비해뒀다. 뭐하러 대리처방을 받아가겠나. 비타민B, C, 항산화제 글루타치온, 마그네슘, 미네랄, 교미노틴이라는 감초주사 등 다양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달에 한번 정도, 부를 때만 들어갔다. 청와대 의무실장, 대통령 주치의, 간호장교가 배석한 상태에서 진료를 봤다. 함부로 오더를 내릴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누리꾼 사이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당일 프로포폴을 맞았다’는 의혹까지 나오는 데 대해선 “제가 알고 있는 한 그분은 마취를 안 하는 분”이라며 “부모님 때문에, 의식을 잃고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았다. 지난해 중남미 순방 때 고산지대를 다니느라 비행기에서 위경련이 일어났다. 내시경하러 국군수도병원에 갔다. 그런데 마취하지 말고 하라고 했다. 이건 팩트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분이 프로포폴을 맞았겠나. 낭설이 너무 많아 ‘끊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 자문의사단에 한의사 4명, 자문의원 12명, 주치의, 의무실장, 간호장교 등이 있다. 내가 알기론, 그날 주치의나 자문의 중 청와대 들어간 사람은 없었다. 피부과 자문의는 OOO인데, 그분은 시술 안 하는 분이다”고 말했다.
(2016년 11월11일 한겨레 인터뷰)
청와대 역시 7시간 성형시술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7시간 의혹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던 청와대는 11일 “박 대통령이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5시11분까지 15차례에 걸쳐 보고를 받았다”고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보고 당시 어디에 머물렀는지에 대해선 ‘청와대 경내’라고만 말해 7시간과 관련된 의혹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 의문투성이 의사 김상만
“대리 처방은 없다”는 김상만 원장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최순실·최순득 자매가 차움의원에서 주사제를 처방받을 때 작성된 진료기록(의무기록)에 ‘청’ ‘안가’ 등의 글씨가 적혀 있었던 것입니다. 이동모 차움병원 원장은 1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의사 김상만씨가 최순실·최순득씨 자매에게 작성한 의무기록을 보니 정맥영양주사 처방과 관련해 ‘청’ ‘안가’ 등이 적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김상만 원장은 16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대리처방은 새누리당 선거대책본부, 차움경영진과 상의해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김 원장은 “어제 보건소 조사에서 옛날 차트를 확인해보니 그제야 (대리처방한 게) 생각이 났다”며 대리처방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단독] “대통령 주사제 대리처방, 차움과 새누리당 상의해 결정”)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김상만 원장은 의혹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언론에서는 김 원장이 대통령 자문의가 된 것부터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의 초대 주치의였던 이병석 세브란스병원장은 와의 인터뷰에서 “주치의가 자문의를 꾸리는데 김상만 원장은 처음 구성한 자문의 명단에 없었다”며 “자문의들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서 처음으로 김 원장을 봤고, 그 이후에 위촉장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습니다. 김 원장이 자문의가 되는 과정에 최씨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이유입니다.
김 원장의 의문스러운 행동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최순실씨가 지난달 말 귀국하기 직전 의사 김 원장은 후배 의사에게 ‘최씨가 공황장애 등을 앓고 있다’는 진단서 작성도 의뢰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순실 담당의, ‘청’ 적은 대리처방 의혹 이어 허위진단서 작성 의뢰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가명이 ‘길라임’이었다는 보도에 누리꾼들이 만든 패러디
■ 영양주사 대리처방 사실로…박 대통령 ‘주사 미스터리’
대리처방 의혹이 불거진 이후 관련 의혹을 조사해온 보건복지부는 “의사 김상만씨가 최씨 자매에게 박 대통령의 주사제를 대리처방했다”고 결과를 15일 발표했습니다. 강남구 보건소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취임 뒤인 2013년 3월 25일부터 2014년 3월17일까지 ‘청’ ‘안가’라는 단어가 13번 나온다는 겁니다. 김씨는 “최순득씨 이름으로 처방해 직접 청와대로 가져가 정맥주사는 간호장교가, 피하주사는 직접 놨다”고 말했습니다.
복지부의 조사 결과 발표 이후 또 다른 궁금증이 생깁니다. 단순 영양주사를 처방한 거라면 청와대 의무실도 모르게 허위기록을 해가면서까지 대리처방을 할 필요가 있었냐는 겁니다. 김상만 원장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청와대 의무실장, 대통령 주치의 등이 배석한 상태에서 진료를 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청와대 의무실장이었던 김원호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문의가 된 김상만씨를 알지 못하며, 김씨가 작성한 의무기록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김씨가 자문의로서 무슨 활동을 했는 지에 대해 의무실장은 “전혀 모른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김 원장이 단순 영양제가 아닌 다른 성분을 처방했을 거라는 의구심이 해소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해석은 다시 ‘세월호 7시간’의 문제와 합쳐져 각종 의혹을 낳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세월호 사고 당일 행적에 대해 “오전 진료 마치고 천안 우정힐스에서 영양연구포럼 회원들과 골프 하다가 (외삼촌이 세월호에 타고 있는데 사고가 났다는) 어머니 전화를 받았다. 인터넷 뉴스에서 모두 구출되었다고 해서 계속 골프를 치고 나서 다시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왔고, 실종상태니 (어머니에게)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근무기록, 하이패스, 동반자 등 홍보팀에서 증거자료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세월호 사고 당시 초등학교 졸업생 환갑여행 일행인 김아무개씨가 나의 외삼촌”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최순실 의료게이트 3라운드 시작?
여태껏 그래왔던 것처럼 ‘의료 게이트’도 고구마 줄기입니다. 끝난 줄 알았더니, 또 다른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2011년 박근혜 대통령이 유력 대선주자였던 시절 차움의원을 처음 이용하면서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쓰고, 진료비를 최순실 자매가 대신 수납 해줬다는 겁니다.
첫 보고를 받은 지 7시간 만에 나타만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찾은 박근혜 대통령.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병원의 VIP 회원권은 가격이 1억5000만원. 차음 관계자는 <제이티비씨(JTBC)>와의 인터뷰에서 “평균적으로 30만~40만원씩 비용이 든다. 수납이 아예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차병원의 원장이 식사대접까지 했다고 합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비용을 전혀 수납하지 않았다면 이는 뇌물죄에 해당됩니다. 차움의원이 돈을 아예 받지 않았는지, 최씨 자매가 대신 수납했는지 명백히 밝혀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비선실세 최순실씨가 지나가는 곳은 모두 초토화되는 형국입니다. 최씨는 도대체 어디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던 걸까요. 앞으로 어디까지 더 나올까요. 끝까지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겠습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