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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성 핵연료저장소 증설 공론조사 설문지, 찬성 유도하게 짰다”

등록 2021-11-30 16:05수정 2021-12-29 14:33

정정화 전 사용후핵연료재검토위원장
사퇴 전까지 활동 경험 담은 저서에서 폭로
“설문지 무단변경해 안전성 관련 설명 삭제”
탈핵단체 주장 ‘공론조사 조작 의혹’ 뒷받침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2020년 6월26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이 2020년 6월26일 오전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열린 사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전 위원장이 지난 주말 출판한 책에서 지난해 월성원전 안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 증설을 위한 주민 공론조사에 쓰인 설문지가 찬성을 유도하는 쪽으로 짜여졌다고 폭로했다. 이 공론조사 결과 증설 찬성 여론이 높게 나와 현재 공사 중인 상황에서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당시 만들어진 관리정책을 재검토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산업통상자원부가 2019년 5월 공론조사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했다. 올해 4월까지 활동한 이 위원회는 지난해 7월 월성원전 안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인 맥스터를 증설하는데 지역 주민 81%가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재검토위 출범 때부터 2020년 6월까지 위원장을 맡았던 정정화 강원대 교수는 위원장으로 활동한 경험을 담은 책 <사용후핵연료 갈등-불편한 진실과 해법>에서 공론조사에 참여할 경주지역 시민참여단을 모집하기 위해 위원회가 만든 설문지가 맥스터 확충을 유도하는 문항으로 무단 변경됐다고 주장했다.

정정화 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장 저서 &lt;사용후핵연료 갈등&gt; 123쪽. 정 전 위원장은 책을 통해 “변경된 설문지는 임시저장시설의 확충을 유도하는 쪽으로 짜여졌다”고 주장했다.
정정화 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장 저서 <사용후핵연료 갈등> 123쪽. 정 전 위원장은 책을 통해 “변경된 설문지는 임시저장시설의 확충을 유도하는 쪽으로 짜여졌다”고 주장했다.

정 전 위원장은 지난해 6월 산업부가 월성원전 맥스터 확충에만 급급해 중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한 공론조사를 하기 어렵다며 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이후 공개적 발언을 피하다 이번 책에서 “위원장 사퇴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경주지역 시민참여단을 모집하기 위한 설문지의 무단 변경이었다”며 자세한 내용을 공개했다.

정 전 위원장이 공개한 책 내용을 보면, 재검토위는 경주지역 시민참여단 150명을 모집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경주시민 3000명을 대상으로 한 1차 설문지를 만들어 지역 실행기구에 전달했다. 이 지역 실행기구는 위원장도 모르게 특정 검토위원과 협의해 핵심 내용을 변경한 설문으로 시민참여단을 구성했다.

책 내용을 보면, 위원회가 지역에 전달한 설문지는 앞 부분에서 주민들에게 원전시설 운영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고 있는지 여부와 개선 방안을 먼저 질문하고 뒤에 맥스터 확충에 대한 의견을 묻는 형태로 구성됐다. 하지만 바뀐 설문지에서는 앞 부분 6개 문항이 통째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정 전 위원장은 특히 책에서 “당초 설문지에는 임시저장시설과 관련된 핵심 문항 서두에 임시저장시설의 안전성에 대한 상반된 입장 설명과 임시저장시설의 확충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른 견해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모두 삭제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삭제된 부분엔 “원자력발전소를 계획된 시점보다 더 일찍 폐쇄하거나, 원전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거나, 전기생산량을 줄여서 사용후핵연료 발생량을 줄이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는 부분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맥스터 증설을 원하는 쪽에서 불편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애초 설문지에 없었던 질문이 추가되기도 했다고 한다. 재검토위가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공개한 설문지는 찬반 의견을 묻는 문항 앞에 원안위가 월성원전 맥스터의 포화에 대비해 증설을 승인한 사실을 아는지 묻는 문항이 배치돼 있다. 이 질문을 두고 탈핵단체들은 이후 이어지는 찬반 답변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적 질문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이 질문이 설문지를 바꾸는 과정에 추가되었다면, 앞서 탈핵단체들의 문제 제기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도 읽힐 수 있다.

정 전 위원장은 책에서 “당초 설문지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문항으로 구성되었다면, 변경된 설문지는 임시저장시설의 확충을 유도하는 문항으로 의도적으로 짜여졌다”고 강조했다.

정 전 위원장 사퇴 이후 재검토위는 김소영 카이스트 교수를 새 위원장으로 뽑아 예정된 공론조사를 그대로 진행해 올해 3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에 대한 정부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을 발표하며 김 교수는 “지역 의견수렴 때 많은 갈등과 그리고 많은 대립이 있었다”며 “이런 과정들을 모두 공개하고 공유함으로써 계속 이 작업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주의하고 어떤 것을 발전시켜야 할지를 아는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논의 과정의 투명한 공개를 강조했으나 정작 재검토위원회는 마지막 회의에서 회의 속기록 비공개를 결정하고 해산했다.

찬성이 압도적으로 나온 지역 주민 공론조사 결과에 따라 월성 원전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맥스터 증설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반대 주민들과 탈핵단체 쪽에서 공론조사 조작 의혹을 제기한데 따른 수사는 아직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다. 정 전 위원장의 설문조사 무단 변경에 대한 구체적 폭로가 공론조사 조작 의혹에 대한 수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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