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11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월성 원전 맥스터(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반대 및 주민투표 결과 수용 촉구 기자회견에서 울산 북구 주민들과 환경 단체 회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사용후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부지 선정의 최종 절차에 주민투표가 도입된다. 부지 선정 착수 시점부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은 20년 안에, 영구처분시설은 37년 안에 확보하도록 했다. 정부가 27일 김부겸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10회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한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심의·의결했다.
하지만 관련법 제정 및 실제 이행까지 논란이 이어질 전망이다. 알파선 방출 핵종이 g당 4000Bq(베크렐) 이상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현재의 원전 부지에 임시저장하는 내용도 포함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차 기본계획이 1차 기본계획에 비해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제1차 계획에 이해당사자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해온 원전 지역에서는 이번 계획도 일방적으로 수립돼 원전 지역이 영구처분장으로 전락할 우려가 더욱 높아졌다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2차 기본계획의 부지 선정 절차 마지막 단계에 주민 의사를 최종 확인하는 주민투표를 넣어 부지 선정 기간을 13년으로 잡았다. 조사계획 수립에서부터 부지 공모, 부지 적합성 기본조사와 심층 조사를 거쳐 12년 만에 부지를 선정하도록 한 1차 기본계획보다 1년 늘린 것이다. 이에 따라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19년에서 20년으로, 영구처분시설 확보 소요 기간은 36년에서 37년으로 각각 1년씩 늘어났다.
2차 계획에는 국무총리 주재 아래 관계 부처 등이 참여하는 유치지역 지원위원회를 설치해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한다는 내용도 새로 포함됐다.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집중해 교육·의료·복지·문화가 그 안에서 모두 해결되는 ‘행복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또 2019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활동한 산업통상자원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고준위 방폐물 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과 정부내 전담 조직 신설 계획도 담았다.
2차 기본계획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박근혜 정부 때 기본계획이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시민사회 주장을 받아들여 재검토를 공약한 데서 출발했다. 그럼에도 재검토를 위한 공론조사 과정에 조작 의혹까지 불거졌고, 공정한 조사가 어렵다며 재검토위 위원장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등 준비부터 파행을 빚었다. 이런 상황에서 확정된 기본계획 내용마저 1차 기본계획과 크게 달라지지 않아 원전 지역을 중심으로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원전 지역 주민들이 특히 우려하는 것은 2차 기본계획에 ‘부지 내 저장’이라는 개념이 도입됐다는 점이다. 1차 기본계획은 원전 부지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을 건설하는 것을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한시적 관리 방안’으로 표현했다. 반면 2차 계획은 같은 내용을 ‘원전 부지내 저장시설의 한시적 운영’으로 표현했다. 1차 계획과 내용상 다르지 않지만 ‘관리’ 대신 ‘저장’으로 명시한 것이다. ‘부지내 저장’이라는 개념은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대표 발의해 현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계류 중인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에도 들어 있다. 실제 이 법이 통과되어야 기본계획도 시행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원전 지역에서는 원전 부지의 임시저장시설이 영구처분시설이 될 우려를 더욱 높인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1990년 충남 안면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다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쳐 실패한 이후 국내 고준위 방폐물 영구처분시설에 대한 논의는 전혀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전례를 볼 때 37년 안에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2차 기본계획이 이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결국 임시저장시설이 결국 영구처분시설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실제 영구처분장은 전 세계에서 핀란드가 2024년 운영을 목표로 건설 중이고, 스웨덴이 2011년부터 10년째 건설허가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 가장 진전된 단계일 정도로 확보하기 쉽지 않다.
원전 지역 주민과 환경·탈핵운동 단체들로 구성된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는 27일 원진위가 열린 서울 정부광화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지내 저장은 핵발전소 부지 안에 사실상 핵폐기물을 기한 없이 저장하겠다는 내용으로 지역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관리정책 방향”이라며 “현 정부와 차기 정부는 핵발전소 인근 지역 주민·지자체를 비롯한 시민사회와 전 국민의 숙의를 통해 제대로 된 고준위핵폐기물 관리정책을 수립하라”고 촉구했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