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통 안에 들어가려고 착지한 꿀벌 그리고 날개를 퍼뜩거리는 꿀벌입니다. 인간을 벌통을 제공하고 보살피면서, 꿀벌이 가져온 벌꿀을 취하지요.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 모든 일은 미국 플로리다를 내리쬐던 뜨거운 햇볕 아래 꿀벌이 사라지면서 시작됐습니다.
“가버렸어. 가버렸다고.”
“뭐가 갔다는 거야?”
“내 벌 말이야. 벌들이 죽어가고 있어.”
이렇게 말하는 양봉가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베테랑 양봉가들은 꿀벌응애 때문일 거라고 안심시켰죠. 모든 양봉가의 골칫덩어리. 감기도 만들고, 폐렴도 만드는 꿀벌의 기생충 꿀벌응애…
그런데 통상적인 꿀벌 폐사와는 다른 게 있었어요. 아침에는 분명 건강한 모습으로 꿀 따러 나간 일벌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꿀벌응애 때문이라면, 보통 벌통 안팎에 죽은 벌들이 발견되거든요. 그런데 벌통에는 방향감각을 잃은 몇몇 벌과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여왕벌만 남아 있더라, 이겁니다.
2006년 겨울, 미국은 떠들썩했습니다. 꿀벌이 사라졌다고요.
이 수수께끼의 현상에 누군가 ‘감소’보다는 ‘붕괴’라는 단어가 더 적당할 거 같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현상은 꿀벌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는 이름이 붙었지요. 그리고 얼마 뒤 유럽에 상륙해 꿀벌을 초토화했어요.
우리는 뒤늦게 꿀벌과 야생 벌 그리고 꽃가루 매개자(수분 매개자)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꽃의 수정을 돕는 이들 곤충이 없다면, 가을의 열매가 사라지고 동물과 인간은 곤궁해질 테니까요.
지난 5월16일 서울환경연합 회원들이 ‘세계 벌의 날’(5월20일)을 앞두고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원, 가로수, 궁궐 등 공공 녹지 공간에 치명적인 농약을 사용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
지난해 전남 해남에서 국내에서도 꿀벌군집붕괴현상이 처음으로 보고됐습니다.
2021~2022년 겨울철 전체의 14.9%인 40만 봉군이 피해를 보았고(농촌진흥청 통계), 2022~2023년에는 8천개 농가의 벌통 가운데 60.9%에서 폐사가 나타났습니다. (한국양봉협회 통계)
많은 언론이 꿀벌 감소와 폐사를 보고 흥분하면서 ‘군집붕괴현상’이라고 불렀어요. 하지만, 엄밀히는 꿀벌의 감소와 폐사를 모두 군집붕괴현상이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그간 미국과 유럽에서 정의해왔던 방식은 여름철 봉군에서 일벌들이 나가 없어지는 현상이에요. 반면 우리나라는 주로 겨울철의 집단 폐사여서 같은 양상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정철의 안동대 식물의학과 교수)
이번 마지막 회에서는 ‘꿀벌 실종사건의 진실’을 알아보려고 해요.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자면, (조금 허무할 수도 있겠지만) 이거예요.
‘꿀벌은 단 한 가지 이유로 사라지지 않는다.’
■ 아시아에서 꿀벌 집단붕괴가 드문 이유
꿀법 군집붕괴현상의 원인으로 가장 유력하게 지목된 게 살충제 ‘네오니코티노이드’예요. 발음하기 어려운 이 단어를 과학자들은 ‘네오닉’이라고 부르더군요. 담배의 성분인 ‘니코틴’과 유사한 ‘새로운’(neo) 신경 활성 살충제예요. (이렇게 담배가 해롭답니다. 여러분, 금연!)
앞서 말했듯 미국과 유럽에선 꿀벌이 사라지자 난리가 났어요. 꿀벌은 환경보호의 상징이 됐고, 아인슈타인은 덩달아 유명해졌고, (이유는 2회에 나와요), 과학자들도 대거 연구에 뛰어들었어요.
별의별 이야기가 다 돌았어요. ‘휴대전화 전자파가 꿀벌에 영향을 미친 거다’, ‘인간보다 머리 좋은 꿀벌이 집단 파업을 한 거다’ 등등. 물론 설득력이 떨어져 진즉에 기각됐지만요.
하지만 중요한 발견도 있었어요. 세계적으로 쓰이는 네오닉 계열의 살충제가 꿀벌의 신경독성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진 거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못 찾는 꿀벌… 급성으로 영향을 미치고 만성으로도 문제가 된대요.
유럽연합은 재빠르게 조처를 했어요. 2018년 네오닉 계열의 살충제 일부가 시장에서 퇴출당한 거예요. 미국 캘리포니아주도 규제에 나섰고요. 미국과 유럽과 달리 한국과 중국 등 동아시아에서는 네오닉 살충제의 위험성이 부각되지 않은 편이에요.
지난 3월 나온 <아시아-태평양 네오니코티노이드의 위험성 평가>라는 국제보고서를 볼까요? 이 보고서는 기존 문헌 분석을 통해 꿀벌과 벌 같은 꽃가루 매개자의 위험성을 평가했는데 “유럽과 미국보다 아시아에서는 네오닉에 의한 위험성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기술하고 있어요.
왜일까요?
농촌진흥청 관계자의 설명이에요.
“외국에서는 종자에 네오닉을 코팅해서 기계로 파종을 하거든요. 그때 뒤쪽으로 분진이 휘날리면서 네오닉이 대기에 비산된다고 봤어요. 그래서 꿀벌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거죠.”
“한국은요?”
“우리나라 같은 아시아는 농업 방식이 달라요. 우선 대규모로 농업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물에 타서 엽상에 (분무 형태로) 살포하는 방식이에요.”
이 보고서는 동아시아의 농업 상황에 맞게 네오닉의 위험성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요. 다만 네오닉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두고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하죠.
소나무 재선충병 발생과 예방을 위해 항공 방제를 하고 있어요. 이런 식으로 꿀벌이 네오니코티노이드(네오닉) 살충제에 노출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하는 의견이 있죠. 연합뉴스
그렇다고 우리나라 꿀벌과 생태계는 안전할까요? 홍석환 부산대 교수(조경학)는 항공 방제 등 늘어난 농약 살포를 의심해요.
“과거에는 경작지만 농약을 쳤어요. 그래서 농약 치는 짧은 기간에 꿀벌은 산림이나 들판으로 나가서 먹이 활동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최근 들어 산림 지역, 특히 양봉을 주로 하는 외곽 산림에도 대규모로 농약이 살포되고 있어요. 모든 곳이 농약에 노출되고 있는 거죠.”
네오닉을 쉽게 봐선 안 돼요. 꿀벌만 문제가 아니에요.
일본 시마네현의 네오닉 계열의 농약으로 호수 하나가 황폐해졌어요. 네오닉 계열의 농약이 살포됐고, 이것이 ‘신지 호수’에 흘러들면서 동물플랑크톤과 곤충의 개체 수가 급감했어요. 이를 먹은 빙어와 뱀장어 개체군이 붕괴해버렸죠. 이 사건은 2019년 <사이언스>에 논문에 실리면서 세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네오닉 계열의 농약은 대략 국내 농약 판매액의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어요. 벼농사에 쓰진 않지만, 과수와 채소류에는 상당히 쓰는 거로 알려졌어요.
농림축산식품부의 입장은 ‘국내에선 네오닉과 꿀벌 폐사와 상관관계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유럽연합에서 규제하니, 우리도 이 추세에 따르겠다’ 정도로 요약돼요. 그래서 꽃 피는 시기에 사용을 제한하는 등 권고를 하고 있어요.
살충제의 문제는 꿀벌만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문제예요. 네오니코티노이드(네오닉) 계열의 살충제로 수생 생태계가 붕괴한 일본의 신지 호수입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꿀벌 폐사와 관련 없다’는 근거로 농축산식품부는 2014년 한국작물보호협회가 내놓은 연구결과를 들고 있어요.
관련 요약본을 어렵게 구해 읽어봤어요. 2014년 4월부터 11월까지 경북 안동의 사과밭과 영양의 고추밭을 관찰했더니, “꿀벌의 사망 성충에서 네오닉 3종과 살충제 등 42개 성분의 농약이 검출됐으나, 꿀벌의 반수치사농도(LD50)와 비교할 때 훨씬 낮은 농도였다”는 거예요. 대조군인 다른 벌통과 비교했을 때에도 꿀벌 폐사가 특별히 많았다거나 문제가 된 적은 없었고요.
하지만 이 결과는 관련 업계의 독성 평가 연구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어요. 꿀벌 군집붕괴현상이 발생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유럽연합과 달리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의 종합적이고 본격적인 조사를 벌인 적은 없다고 하네요.
네오닉을 항공 방제 약품으로 쓰는 것에 대해 산림청에게 물어봤어요. 담당자는 “지난 2월 넓은 지역에 이뤄지는 항공 방제를 중단하고, 소나무재선충 발생 지역을 중심으로 한 드론 방제로 전환하기로 했다”며 “네오닉 계열의 살충제도 쓰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어요. 이런 산림청의 권고가 실제 방제 현장에서 얼마나 적용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 응애와 전쟁을 치르는 양봉가들
네오닉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나요?
사실 과거에는 꿀벌의 집단폐사가 원인이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광범위한 환경 변화와 기생충, 바이러스 등을 함께 보고 있어요. 전형적인 꿀벌 집단붕괴현상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꿀벌의 감소나 강건성 악화를 함께 봐야 한다는 거예요.
꿀벌을 가장 괴롭히는 건 ‘바로사응애’라고도 불리는 ‘꿀벌응애’예요. 옛날에 아시아의 벌에서 살았던 기생충이죠. 그런데 ‘유럽꿀벌’(우리가 생각하는 그 꿀벌)이라는 가축화된 외래종이 아시아에 들어오면서 응애는 꿀벌로 숙주를 갈아탔고, 그 결과 전 세계로 퍼졌어요. 아시아에서 전혀 문제 되지 않던 응애는 유럽꿀벌에겐 엄청난 골칫덩어리였어요. 꿀벌응애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어디서나 봉군(벌통) 소실이 발생하고 있어요.
양봉가는 꿀벌응애와 전쟁을 치르고 있어요. 한국의 꿀벌 집단폐사도 꿀벌응애가 주요 원인이에요. 2021~2022년 동절기 집단폐사에 대해서도 농축산식품부는 꿀벌응애를 원인으로 지목했어요. 응애가 기존 약품에 내성이 생겨 약이 잘 듣지 않았다면서요.
벌에 기생해 사는 꿀벌응애입니다. 무섭게 생겼죠? 이 친구의 고향은 아시아인데, 가축화된 유럽꿀벌을 타고 전 세계로 퍼졌어요. 위키미디어 코먼스
또 하나 봐야 할 것은 기후변화로 잦아진 기상 변동이에요. 꿀벌은 꽃 피는 철에 벌통을 나가 꿀을 수확하고, 겨울에는 벌통 안에서 휴식을 취해요.
그런데 갑자기 겨울에 날씨가 따뜻해지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도 모르게 밖에 나갔다가 다시 추워진 날씨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거죠. 이런 식으로 기후변화는 꿀벌의 생활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건강을 악화하는 주범이에요. 바이러스와 기생충이 창궐하는 환경도 만들죠.
한국의 경우, 구조적인 원인도 있어요. 급속한 도시화와 산림개발로 꿀벌의 일터인 숲과 꽃이 사라지고 있어요. 반면 양봉산업은 팽창하고 있죠. 1㎢당 한국의 꿀벌 사육밀도는 21.7통으로 세계 최고이죠. 꿀벌은 밖에 나가 다른 꿀벌, 곤충과 경쟁하느라 몸이 죽어나는 거예요.
집에선 꿀벌응애가 들끓고, 밖에 나갔더니 경쟁자들은 많고, 먹을 건 별로 없는데 농약만 잔뜩 묻어 있고, 어떤 날은 예상치 못한 추위에 덜덜 떨고… 꿀벌은 어떻게 될까요? 맞아요. 허약체질이 되는 거예요.
통계학자 한스 로슬링은 책 <팩트풀니스>에서 어떤 문제에서 단일한 원인만 보고, 단일한 해결책을 선호하는 경향을 ‘단일 관점 본능’이라고 했어요. 인간은 본능적으로 단순한 시각에 끌리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완벽하게 오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하죠.
꿀벌 집단실종 사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과학이 명쾌한 답 하나를 가르쳐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오히려 회색 지대를 더듬더듬 찾아가는 게 과학이에요. 문제의 원인은 단 하나로 수렴되지 않죠.
꿀벌은 진공의 유리관 속에 들어있지 않아요. 꿀벌을 기르는 양봉가 그리고 야생 벌과 곤충 등의 경쟁자들, 꿀벌응애와 바이러스 등 작은 생물들, 각종 살충제와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죠. 인간-비인간 생태계 속에서 이 사건을 바라봐야, 조금이라도 한 발짝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거예요.
<끝>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