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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장애인

중증장애인이 문고리에 스스로 수갑을 채운 이유[뉴스AS]

등록 2023-09-24 07:00수정 2023-09-24 17:52

‘동료지원가 사업’ 2024년 예산 0원으로 삭감
18일 오전 9시께 전장연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로비에서 농성 중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장연 제공
18일 오전 9시께 전장연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로비에서 농성 중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전장연 제공
문석영(31)씨는 지난해 3월부터 저축을 할 수 있었다. “실은 비싼 음식”이라며 슬며시 말하던 ‘아웃백’(패밀리레스토랑) 메뉴도 가끔씩 먹을 수 있게 됐다.

시간외 수당까지 포함해 그가 한달에 번 돈은 120만원 남짓. ‘기초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가 지급한 돈 외에 중증장애인 문씨가 또 다른 중증장애인의 모임을 지원하고 상담하는 ‘동료지원가’로 일하면서 번 돈은 문씨의 생활에 윤기를 더했다.

문씨를 포함한 187명의 중증장애인이 올해 말까지 동료지원가로 일한 뒤 ‘전원 해고’될 위기에 처해있다.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동료지원가 사업) 예산이 올해 23억100만원에서 내년 0원으로 책정되면서 사업은 시작 4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고 있다.

이들이 지난 18일 아침 7시부터 서울 중구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역본부 로비를 점거한 이유다. 공단 직원이 “불법 점거”를 경고한 뒤 10여분이 흐르자, 경찰이 진입했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경찰에 끌려나가지 않기 위해 원모양으로 누워 서로의 팔을 꼭 낀 채 농성을 벌이던 27명의 장애인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손대지 마”라는 비명이 나왔다.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문고리에 스스로 수갑을 채운 활동가도 있었다. 이들의 가슴팍에는 ‘살려라∼ 동료지원가 사업을 책임지고 살려라’, ‘고용노동부 우리를 만나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점거 90분도 채 안 돼 27명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중증장애인이 사업 대상자이자 제공자인 고용노동부 사업은 ‘동료지원가 사업’이 유일하다며 사업 폐지 계획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동료지원가로 일하는 문석영씨는 “외롭지 않았다”며 같은 처지의 중증장애인을 도울 때의 장점을 설명했다.

노동부는 보건복지부의 ‘동료상담 사업’과 해당 사업의 성격이 겹친다는 점을 폐지 근거로 들었다. 두 사업은 ‘장애인이 장애인을 멘토링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노동부 사업은 ‘중증장애인’이 서비스 제공자면서 동시에 수혜자라는 점이 다르다. 동료지원가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현장 기관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의 송효정 활동가는 “복지부 사업은 모든 장애인이 참여자라서 중증장애인이 서비스 제공자로 참여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중증장애인 10명 중 8명이 일자리가 없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늘리지는 못할망정, ‘사업 유사성’을 근거로 줄여나가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이 조사한 ‘2022년 하반기 장애인경제활동실태조사’를 보면, 중증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23.2%로, 경증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능력 있는 장애인을 원하는 시장에서 능력이 부족한 중증장애인의 일자리는 부족했다. 노동부 차원에서 중증장애인 취업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고용을 촉진하기 위해 동료지원가 일자리 사업이 만들어졌다”라고 사업 배경을 설명했다.

동료지원가 사업을 폐지하는 또 다른 이유로 노동부는 실제 예산집행률이 저조한 점도 꼽았다. 사업을 수행하는 위탁기관에서 한 해에 책정된 예산을 온전히 다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의 예산 실집행률을 근거로 들었다. 실집행률은 2020년 33.4%, 2021년 24.8%, 2022년 38%다.

활동가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치명률은 비장애인보다 중증장애인에게 더 높았다. 현장에선 대면 상담이 힘들었고, 고용노동부는 상담이 힘든 상황을 인정하며 비대면 상담을 권고하기도 했다. 이례적인 시기가 지났으니 실집행률은 이제부터 따져봐야한다는 것이다.

배현정 기자 spr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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