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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의료·건강

정신질환 방치해 ‘비극’ 부른 듯…“치료받았다면 충분히 예방”

등록 2023-08-07 05:00수정 2023-08-07 11:37

모두의 안전 위한 ‘국가치료 체계’ 필요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3일 발생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피의자가 경찰 조사 과정에서 “특정 집단이 나를 괴롭히고 죽이려 한다”고 하는 등 망상 증상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발생 3년 전 사람과 어울리지 않는 특성 등을 보이는 조현성 인격장애(분열성 성격장애)를 진단받고 치료를 받지 않다 망상이 심해진 정황에 대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정신건강 관리와 조기 치료가 이루어졌더라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들은 환자 당사자를 비롯해 모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중증 정신질환 치료·회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투자 확대와 시스템 변화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국제정신건강조기중재학회(IEPA) 부회장인 김성완 전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6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피의자가) 최근 망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보도된 진술대로라면 망상 관련 행동으로 사건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망상은 전체 인구 7%에서 나타나며 이런 증상이 있다고 꼭 조현병인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의자가 진단받은) 조현성 인격장애는 그 자체로 중증 정신질환이 아니지만 어떤 계기가 되면, 정신 증상이 나타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높아 관리가 필요하다”며 “망상으로 인한 사건이 맞다면, 증상 변화가 나타났을 때 적절한 치료로 충분히 예방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학력·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중증 정신질환을 맞닥뜨릴 수 있다고 했다. 중요한 건 적절한 치료다. 박근호 마포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정신장애인들이 치료를 중단하는 이유에 대해 “약을 먹다 증상이 나아졌다고 생각해 그만 먹는 경우가 있다”며 “부작용이 있거나 큰 효과가 없다고 생각하는 등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고 입원에 대한 두려움 등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제작한 ‘2023년 정신보건수첩’ 중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방안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제작한 ‘2023년 정신보건수첩’ 중 응급상황 발생 시 대처방안
다른 질병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가 적극적으로 치료에 참여해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해국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조현병 같은 중증 정신질환은 젊은 나이에 처음 발병하는데 자신이 환자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환자와 보호자 모두 사회적 편견 때문에 치료를 꺼리기도 한다”며 “약물 치료뿐 아니라 다양한 재활 서비스 등 치료 자원을 적극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느티나무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장창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의사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단지 약이 추가되고, 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오히려 더 힘들어져 힘들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겁난다는 환자도 있다”며 “치료를 받지 않으려는 이들의 마음을 열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의 ‘오픈 다이얼로그’(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등 전문가와 정신장애인·보호자·지인 등이 함께 위기 상황과 대책에 대해 대화)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환자가 자신과 타인을 해칠 위험이 큰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의료 자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증상이 심각해 입원이 필요함에도 치료할 병원을 찾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커지고 있다는 우려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국내 정신과 입원 병상은 2017년 6만7천개에서 2023년 5만3천개로 줄었다”며 “신체질환을 동반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상급종합(대형)병원의 정신과 병상도 낮은 수가(진료 가격)로 인해 지난 10년간 1천개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인력이나 의료서비스에 투입하는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해 급성기 입원 치료를 하는 병원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다.

대한조현병학회도 성명을 내어 “조현병은 (발병) 초기에 집중 치료·관리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치료, 관리, 연구에 투입되는 재정은 매우 열악하다”며 “해외에서는 조현병이 주로 발병하는 청소년·청년 시기 정신건강 관리를 위한 지원 체계를 만들고, 조기 치료를 위한 (지역별) 거점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박현정 saram@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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